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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쥬쥬 May 13. 2019

퇴사 후, 달라진 생각들

그리고, 퇴사 글을 읽는 분들께

퇴사 후의 나의 생각과 삶은 여러모로 많이 변했다. 무엇이 달라졌는데? 하면 단번에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쩌면 뚜렷한 대답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런 대답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퇴사라는 사건 그 이후 내가 변해가는 그 과정만큼은 만족스럽다.




# 꼭 회사를 다녀야할까

나의 꿈이 회사원은 아니었으나, 당연히 졸업 후 회사를 다녀야한다고 생각했고 내 주변도 다들 그랬다. 그래서인지 취업준비를 하면서 한동안 회의감에 휩싸이기도 했었지만, 다시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편승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더욱이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하지못했다. 간혹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넋놓고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나는 시야가 좁았다. 내가 나름 회사생활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 적도 있긴 했지만, 나는 정말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큰 일이 나는 줄 알았다. 회사를 그만 둘 즈음해서는 '뭘해도 굶어죽지는 않겠지..' 라는 막연하고 철없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퇴사를 하고 마음이 조금 열리니 세상에는 회사원말고도 너무 많은 직업이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회사원이라는 하나의 옵션이 내 인생 내내 따라다니긴 하겠지만, 이제는 그것이 one and only가 아닌, one of them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임은 확실하다



#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월급을 꼬박꼬박 받던 직장인 시절에는 돈이 늘 부족했다. 월급의 일정액은 꾸준히 적금을 들고 있기는 했지만, 항상 그 외 내가 계획했던 용돈 이상의 돈을 지출했다. 그렇게 매 월 크다면 큰 돈을 쓰면서도 사고싶은 것을 다 못사서 아쉬워했다. 회사를 그만두고나니, 금전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변화가 생겼다. 당연하게... 소득없이 지출만 해야하니 돈을 아껴서 써야했다. 나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학생때부터 돈이 잘 새는 편이었는데(어떻게 아시는지 사주에서도 늘 언급이 된다...ㅠㅠ), 자연스레 그 것부터 고쳐나가면서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불필요한 소비를 해왔는지 깨닫게되었다.


필요한 걸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뭔가를 사고싶어서 소비의 타겟을 찾던 그 때에 비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이 오히려 물질적 결핍이 훨씬 적다. 극단적인 예로 회사를 다닐 때, 가끔씩 사치를 했다. 매일 출근길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고있노라면, 종로의 직장인들은 다들 명품백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았다. 나도 하나를 샀다(질수없지). 그래도 또 신상은 나오기 마련이고, 컬러와 사이즈는 다양하니 하나에 그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때는 가방 하나 마음대로 못 사는 삶이 너무 불행할 것 같았던 나는, 지금은 명품백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처지도 못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런 환경속에서 쓸데없이 무리한 소비를 하기도 했던 것 같아서 한없이 부끄럽다. 여전히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돈이 언제나 행복과 만족감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배우고 있다. 



#자유와 여유의 달콤함

남아도는(?) 시간은 나를 분명 달라지게 만든다. 육체적, 정신적 자유로움은 이렇게도 달콤한 것이었다. 내가 사실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열심히 사는 부류도 아닌데도, 진정 이런 시간을 가져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사실 자유가 없었다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있어도 잘 쓸줄을 몰랐다. 시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쓸 줄도 알게되었다. 가족들을 위해 내가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당연히 엄마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집안일들도 조금씩 거들었다. 선물하기위해 디저트를 만드는 일, 항상 나를 데리러오던 남자친구를 내가 먼저 찾아가는 일 등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의미있고 보람찬 것인지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고슴도치같던 예민함도 많이 사라졌다. 대학시절까지 포함해서 10년 가까이 만원 지하철 생활을 하면서, 나는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끔찍했다.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어느 날은 지하철 역 계단에서 어깨를 부딪히고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바쁜 길 가운데서 머뭇거리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화를 냈다. 매일 지하철에서 어떻게 하면 앉아서 갈 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지만 바쁘고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지금은 이 전만큼 지하철을 타지는 않지만, 얼마 전 역에서 나는 다시 여유로운 예전의 모습을 찾은 것 같아서 속으로 웃음지었다.


항상 주저하고, 시간을 탓하며 미뤄두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게 된 것도 마음의 여유의 덕이다. 분명 그 때도 시간이 있었을 텐데, 온갖 이유를 갖다대며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많았다. 이 전에도 글로 쓴 적이 있지만(이전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은 공부도 하고, 그림도 배우고, 등산도 하고...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늘 머뭇거렸던 나는 지금 고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잡다한 취미와 관심사가 생겼다. 브런치도 그 중 하나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리고 아직도 고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전 이야기.

      ▶ 내가 퇴사한 진짜 이유내가 퇴사한 진짜 이유내가 퇴사한 진짜 이유







<저의 퇴사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이 글을 기다리신 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뭔가 굉장히 부끄럽긴하지만, 이 글을 쓰고 나면 한번쯤은 저의 진솔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 위해 시작했던 브런치인데, 퇴사에 관한 글들이 과분하게 다음 메인에도 몇 차례 오르면서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글을 쓰겠다고 예고(?)해 놓고도, 이제서야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과연 내가 퇴사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이미 퇴사한지 오래되어서 그 기분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고, 글로 옮기다 보니 자꾸만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글에 묻어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혹시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마냥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글에 너무 힘이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퇴사가 무슨 자랑도 아닌데;


여전히 퇴사와 관련된 키워드로 유입이 많이 되고 있지만, 아마 퇴사 이야기는 앞으로 쓸 일이 거의 없을 듯 합니다. 이제는 쓸 이야기도 별로 없고요. 저도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서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겠죠. 속도에만 집착했던 과거에서 제대로된 방향을 찾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과정들을 브런치에 공유하려고 합니다. 


퇴사하고, 제가 가장 크게 깨달은 하나의 키워드는 '본질'에 관한 것 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본질을 추구하기에 비롯된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정말로 만족하지 못하면서, 각종 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역시도 척으로 살아남아야하는 그 환경이 저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조차도 잘 모르는데, 그런 상황에서 각종 옷만 겹겹이 입혀졌고, 그런데 그 옷들은 제 옷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모두 벗어던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지금 이 시간들이 값지게 느껴집니다. 퇴사를 하고나서 불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여전히 그 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한 쪽 문을 닫아야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합니다. 다른 문을 열기위해 더 고민하고, 진짜 '본질'이 있는 건강한 삶을 또 열심히 살아가야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모두 건강한 삶을 지켜나가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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