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쥬쥬 Mar 15. 2019

취향을 만들어가는 기쁨

색으로 채워가다

그렇다 할 취미가 없다.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 딱히 잘하는 것도 없다. 그게 나였다. 뭐 지금도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요즘의 나는 '무엇을 좋아해요, 요즘에는 무엇에 관심이 있어요'라고 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나를 온전히 채워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소하고 작은 하나하나가 쌓여서 나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퇴사한 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이제는 인문고전을 읽어보려고요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책을 많이 읽으려고 '시도'는 해왔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책꽂이에는 사놓고 안 읽은 책 수 권이 나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책은 몇몇 읽었으나, 다른 책들은 뚜렷한 취향 없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잡다하게 읽었다(그것도 어쩌다 한 번씩). 그러다가 작년에는 부족한 지식을 채워보고자(?) '지대넓얕'을 사서 읽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워가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상에 대해 더 알고싶어져, 쉬운 입문용 인문학 책찾아 읽게 되었고 이제는 범위를 조금 넓혀 고전문학도 틈틈이 읽고 있다. 책 읽는 것이 이처럼 나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인지는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된 지금은 그 과정이 매우 행복하다.




요즘은 클래식도 들어보고 있어요

잠자리에 막 들었던 어느 날 밤, TV에서 귀에 익은 클래식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그 선율에 거실로 이끌려나가서 피아노 연주를 넋 놓고 감상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고 평생 즐겨본 적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날은 정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피아노 곡과 그 다음 바이올린 협주곡까지 다 들은 후에야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나는 감동(?)인지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튜브로 한참을 검색하여 더 듣다가 잠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고, 억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나는 때때로 무언가를 하면서 조성진이나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곡을 틀어놓고는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곡을 듣는 것도 여전히 좋지만, 이제는 클래식이 더 좋을 때도있다. 아직 나의 수준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나, 나의 음악적 취향에 이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하나가 더해진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된다.




최근 가장 재미있는 것은 요리에요

주방일이 늘 여자의 몫인 게 싫어서 의도적으로 주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작은 일조차 시키지 않았던 엄마의 의지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나는 음식을 해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보는 유튜브 채널의 적어도 절반은 요리 영상이고, 수시로 무엇을 어떻게 해 먹으면 좋을지 생각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내가 주방에서는 유독 노래를 많이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음이 났다(엄청 즐거운건가..?). 요리 자체의 행위도, 그 음식을 나누어먹는 것도 단순하지만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요리가 억지로 하는(혹은 누구는 해서는 안되는) 의무적인 가사노동만은 아님을 깨달게 된 것도 좋다.




나는 수시로 좋아하는 것이 바뀐다. 한동안 빠져있다가도 금방 관심이 식어버린 것도 부지기수다. 취향이 수시로 바뀌어 그것이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취미 하나를 끝까지 마스터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나의 그런 모습조차 받아들여보려고 한다. 언제든 취향이 바뀌어도 반갑게 맞아서 또 나의 일부를 채우면 그만이지.





+그 날밤 TV에서 마주한 매력적인 지용 피아니스트의 영상(그때 그 곡의 영상은 없다..ㅠㅠ)

 https://www.youtube.com/watch?v=DpCP_kkyEiw 

매거진의 이전글 Adieu, 20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