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리면 보이는 것들
안대를 비행기에서, 또는 어디에선가 사은품으로 받아와서는 항상 서랍 속에 두었지만, 나는 그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우선, 자는 데 무언가가 걸리적거린다는 것이 불편했고, 시야를 강제로 가린다는 것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최근 안대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얼마 전 급 떠난 치앙마이 여행으로부터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치앙마이가 아니고, 혼자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호스텔을 숙소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내가 묵은 방은 8인실 여성 도미토리로, 침대마다 개별 커튼을 설치하고 있긴 했지만 각자의 활동시간이 다름은 어쩔 수 없기에 안대와 귀마개를 미리 준비해 갔다. 생각보다 얌전한 친구들이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으나 나는 혹시 모를 방해에 대비하여 난생처음으로 안대를 끼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사실 나는 과할 정도로 스마트폰을 보는 편이다. 시끄러워서 각종 푸시 알림은 꺼놓지만 업데이트된 것이 있나 수시로 확인하고,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계속해서 체크한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유저들이 무려 하루 평균 90번을 잠금해제한다고 하는데 혹여 그게 내가 아닐까 뜨끔하다. 이 정도로 중독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다 보니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자기 전 스마트폰은 깊은 잠을 방해해서 피곤해진다는 뉴스나 엄마의 잔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침대에 누우면 자연스럽게 핸드폰에 손이 닿았다. 딱히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뉴스를 뒤적이고, SNS를 한번 훑어보고, 그리고 더 이상 할 게 없어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눈이 억지로 감길 정도로 피곤해지면 그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핸드폰을 보다가 얼굴에 떨어뜨렸다는 우스운 얘기, 폰을 손에 쥔 채 잠에 들었다는 이야기들도 비단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피곤해졌고, 눈도 점점 침침해졌다. 그 보다도 그렇게 매일 몇 시간을 읽고 보았는데도 나에게 별로 남은 것이 없었다. 내가 주로 본 것들이 전부 일회적으로 흥미를 주는 요깃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학창 시절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탈이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어제 생각하다 보니 잠을 설쳤어"하던 때도 종종 있었다. 생각에 있어서 특별한 주제는 없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누군가를 보면서 설렜던 일,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정도로 민망한 실수,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의 모습 등등.. 주제는 무한했고, 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기도 또 작아지기도 했다. 가끔 특정한 주제에 꽂혀서 생각을 거듭하고 또 거듭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눈을 감고 생각의 공간을 자유롭게 떠돌다가 자연스럽게 잠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밤의 그 시간은 나의 상상력을 키우고, 현실 생활에서 다듬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가다듬는 시간이었다.
호스텔의 좁은 이 층 침대에서, 스마트폰은 머리맡 어딘가에 쉬게 놓아둔 채, 안대를 끼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 넓디넓은 생각의 공간이 다시 열렸다. 오늘의 여행을 생각했다. 찌듯이 더웠지만 아름다운 날이었다. 매 번 혼자 다니는 데도 어김없이 걱정하시던 부모님을 생각했다. 다음 여행은 엄마와 함께 해야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행을 왜 하고 있는지,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매일 찌뿌둥하던 몸이 하루아침에 상쾌해졌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몸의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을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는 않지만. 단지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젯밤의 경험이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꿈 많고 생각 많던 내가 지금은 왜 단순하기 그지없게 되었는지, 그런 지금의 내가 삶에서 결핍을 느끼는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방의 불을 끄고 안대를 착용한다. 새어 들어오는 빛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원 없이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더 이상 답답하지 않다. 눈은 가렸지만, 더 큰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