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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빠리 Sep 05. 2024

돌아와요, 나의 알랭 들롱

잃어버린 기억

아버지는 갑자기 서른이 되었다. 아흔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고 있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당신에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갑자기 늘어나며 끊임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 평소에는 소식을 하던 아버지는 이제 하루 종일 배가 고프다며 쉴 틈 없이 음식을 찾아다닌다. 손에 잡히는 간식들과 과일을 옷장에 감춰두고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한다. 옷장 깊숙이 숨어있던 과일이 썩어서 곰팡이가 질질 흘러내린다. 미물이라 할지라도 싱싱함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인지능력은 없지만 하루에도 오만가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며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아지면 뼈만 남은 손으로 아무에게나 해코지를 한다. 아버지의 지식과 패션으로 가득 찼던 사랑방은 이제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차 있고, 지독한 공허가 초점을 잃은 아버지의 눈을 점령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영국신사'라 불렀다. 훤칠한 키에 올곧게 선 양복이 잘 어울리고 종종 파나마 중절모와 빈티지한 베레모를 적절히 코디하던 아버지. 옷맵시로 말하자면 읍내 최고의 멋쟁이였다. 수려한 외모에 젊잖은 매너, 뛰어난 학식을 지닌 아버지는 당신의 이름 석자보다 '영국신사'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서울에서 내려와 주말을 보내는  별장집 여사님은 아버지가 불란서 배우 알랭 들롱을 참 많이 닮았다고 했다. 짙고 큰 눈매, 매끈하게 빠진 턱선, 여사님은 아버지가 이런 깡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기에는 아까운 얼굴이라 했다. 시골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강아지 이름 같다면서 알랑이 발랑이라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어린 나에게 그 불란서 배우의 이름은 충분히 이국적이었고 그 어감마저 신비로웠다. '주말의 명화'에서 알랭 들롱 영화를 방영할 때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자정까지 시청하곤 했다. 보면 볼수록 아버지는 알랭 들롱과 닮아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알랑 들롱이 아버지보다 몇 살은 어리니까 그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 동서양의 인종적 다름과 물리적인 괴리감을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이 유사함은 어린 나에게 신기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멋 부리기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치매노인들이 입는 상하가 붙은 파란색의 옷을 입고 있다. 꼭 우주복 같아 보이기도 한다. 대소변의 감지력마저 잊어버려 기저귀를 노상 차고 있어야 하는데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옷을 벗어젖혔다. 어느새 방안엔 기저귀 조각들이 널브러지고 누런 대변은 벽이며 이불, 당신의 손톱 밑으로 온통 범벅이 되어 고약한 냄새를 뿜어냈다. 파란 우주복을 어떻게 벗는지 모르는 아버지는 우주복안에서는 아이처럼 순해진다. 


아버지의 얼굴과 피부는 목피처럼 거칠고 메말라만 간다. 검버섯과 흑자들이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 위에 곰팡이처럼 번져 있다.  

왜 이러고 있어. 얼른 일어나 좋아하는 양복이랑 구두 신고 가고 싶은 곳 다녀야지. 자식들도 못 알아보고. 이럴 거면 죽는 게 낫지,라고 엄마는 아버지가 어지럽혀 놓은 사랑방을 정리하면서 아이 같은 아버지에게 핀잔을 준다. 인지능력이 없고 거동을 못하더라도 아버지가 오래 살아 있기를 바라던 엄마의 푸념은 시간이 갈수록 깊은 한숨으로 변해간다. 한 뼘 굵기로 야윈 아버지의 허리춤에서 시작된 욕창이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가고, 연고라도 바르려고 옷을 들추는 엄마의 얼굴을 향해 아버지의 부지깽이 같은 팔뚝이 냅다 공격을 가해온다. 엄마의 얼굴에 퍼런 멍이 세상의 모든 비애를 물들여놓은 것처럼 퍼져 있다. 엄마의 얼굴도 죽은 꽃처럼 변해가기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고 몇 년 만에 귀국한 나를 보고 아버지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핸드백을 낚아채 가방 안을 뒤졌다. 예전 같았으면 사립문까지 나와  두 팔을 한껏 벌려 포옹을 해주던 아버지였다. 그 넓은 품으로 뛰어가 안기면 세상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든든한 아버지가 강철 방패가 되어 나를 수호해 주리란 믿음 때문이었다.

먹을 것  좀 사 오지. 저 늙은이가 밥을 안 줘. 빵이고 뭐고 죄다  어디에 감춰놨는지 찾을 수가 없어. 배가 너무 고파. 올해 몇 살이나 되셨나. 오십여? 뭘 좋은 걸 먹었길래 서른 된 나보다 더 젊어 보이네. 

도대체 아버지는 나를 누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또렷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보고 싶다고 서둘러 한국을 다녀가라고 하더니 그 딸이 정작 당신 앞에 가까이 서 있는데도 흥미를 잃은 얼굴로 개연성 없는 물음을 늘어놓는다. 퇴색되어 가는 아버지의 기억을 환기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아버지의 서른은 얼마나 찬란했었을까!  늘 과묵하고 점잖던 아버지는 서른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뒤로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현재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기억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나를 알아보고 넓은 팔로  안아주기를 ….. 부질없지만 간절한 바람들이 눈물 되어 쏟아진다.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은 천천히 가슴 밑바닥부터  절규에 가까운 후회의 단편들을 끊임없이 게워낸다.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아버지, 최고의 멋쟁이 신사, 최고의 사랑이었다고 왜 진즉에 말하지 못했나. 아버지의 고독한 눈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텅 빈 영혼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돌아와요, 나의 알랭 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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