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는 지금 보랏빛 천국이다. 봄의 상징, 자카란다가 가는 곳마다 몽환적인 색깔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카란다 꽃잎이 떨어진 길을 걷다 보면, 나도 금세보랏빛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몇 해 전,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서부 호주, 퍼스(Perth)로 출장을 다녀온 후, 온몸에 신열과 크고 작은 붉은 반점이 퍼지기 시작했고, 고열이 오를 때마다 얼굴과 엉덩이에 수포가 부풀어 올랐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아무리 발라도 차도가 없는 가려움증은 절망적일 만큼 극심한 고통과 함께 우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트랭퀼라이저를 맞아도 불면의 밤은 계속되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받으며 재와 기와로 몸을 긁었다는 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려움증이 밤마다 더 심해질 때마다, 욥이 왜 스스로 죽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했는지 절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병상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두 다리는 무겁기만 하고 감각이 없었으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병원에서 가능한 모든 검사를 다 받았지만, 나의 상태는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나를 검진한 네댓 명의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무정한 대답뿐이었다. 세포 조직 검사와 골수 검사를 할 때는 마취제조차 제대로 듣지 않아 생살을 떼어내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나온 교수가 아마도 면역력이 약한 상태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퍼스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짬을 이용해 피나클사막(Pinnacle)과 웨이브락(Wave Rock)을 보러 갔었다. 아마도 무엇인가 내 몸에 침투해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Pinnacle, Perth, 서부호주
Wave Rock , Perth, 서부호주
고열로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던 내게 산소호흡기가 달렸다. 그때 한 간호사가 내 머리맡에 성경책을 놓아주며 말했다.
“간절하게 기도해 보세요.”
그녀는 자신도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은 나를 담당해 온 의사들과 타 병원에서 온 의사까지 함께 상주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간호사가 성경책을 놓아주던 순간, 나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머무는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성경책을 환자에게 가져다주는 경우를 봤는데 그럴 때마다 통곡소리를 듣곤 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슬퍼하는 통곡이었다.
그동안 내 인생에 무엇이 중요했었나, 오만가지의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데… 무엇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정신력은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추락하기만 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인생이었으니 지금 죽는다 해도 아쉬울 건 없지 않은가. 사십 년을 넘게 살았으면 충분히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저 편하게 죽을 수 있게 오직 간절함으로 기도해 보리라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숨 쉬는 것도 수월했고 고즈넉해졌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을까.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 자유로워 지기를, 만약에 나에게 지속적인 생명을 허락한다면, 신이시여, 좋은 일만 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원초적이고 맹목적인 기도부터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은 성경책을 향해 뻗었고 그것을 가슴 위에 올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약한 영혼을 이제 신의 손에 맡기는 일 이외는 나에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병상을 에워싼 한 무리의 의사들이 보였다. 지난 새벽에 의사들이 두 차례나 나를 검진했는데, 그때 나는 여느 날과 달리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밤마다 가려움증이 심해 스테로이드 크림을 두세 통씩 써야 했고, 간호사들의 끊임없는 보살핌이 필요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는 것을 의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기적을 불러온 것 같군요.”
한 의사가 내 가슴에 놓인 성경책을 옮기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열이 많이 내렸고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간밤에 무언가가 다가와 내 양팔을 들어 올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마비되었던 다리는 점점 가벼워졌고, 어디선가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것이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이주가 지나자 내 몸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희귀한 육체적 고통을 겪은 후, 내게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가치관과 인생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상극보다는 상생을, 욕구보다는 만족을,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추구하게 되었고, 삶의 커다란 변화를 바라는 대신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다리를 꼬집었을 때 느껴지는 작은 아픔조차 경이로웠다.
퇴원 후 올림픽 공원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푸른 잔디가 어쩌면 그리 아름다운지,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와 블랙스완이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진초록 잎을 잔뜩 몸에 두른 피그트리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환희의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보랏빛 자카란다 꽃이 마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만개해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까지 고독한 견딤을 감수해야 했지만,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마침내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