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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 Jul Aug 15. 2021

인간 에리얼의 꿈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살아가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마치 꿈같은 순간들. 현실이라기에는 너무 완벽한 순간들. 또 반대로, 온 세상이 등지는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삶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것 같아 한없이 가라앉는 것만 같은 순간들.


후자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면 에리얼은 습관처럼 바다를 찾았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조용한 바다였다.  그리고 바닷물에 비치는 눈부신 햇살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다음 생엔 인어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인간이 인어로 태어난다니 터무니없는 기도였음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마음이 놓이는 기도였다.

바닷속은 왜인지 더 따듯할 것만 같았다. 깊고 어두운 바닷속이 그럴 리가 없음에도 햇살이 내리쬐는 육지보다 더 따스해 보였다. 에리얼은 바닷속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다면, 바다 곳곳을 헤엄칠 수 있는 지느러미와 꼬리만 있다면 지금보다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진 않을까.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울다 눈을 떴을 때, 눈부시던 햇빛은 온대 간대 없고,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이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에리얼은 열심히 뛰었다. 모래사장 끝자락에 놓인 커다란 파라솔을 발견해 그곳으로 몸을 피했다. 젖은 머리를 툴툴 털며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비를 한참을 서서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생각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구나. 더 깊어질 뿐이지.'

에리얼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에리얼의 온몸이 오히려 따듯하게 느껴졌다. 에리얼은 신발을 벗고 바다에 살며시 발을 담갔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덧 바닷물이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되뇌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아. 바다는 따듯해.'

에리얼은 점점 숨통이 막히기 시작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바다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온몸이 비틀리는 느낌이었지만 그저 이렇게 바다의 일부가 될 수만 있다면 아무렴 괜찮았다. 그렇게 에리얼은 서서히 바다로 가라앉았다. 바닷속 인어가 되는 꿈을 꾸며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들었다.

에리얼은 바라던 데로 인어가 되었을까?

자유로움을 얻었을까?

인어공주 에리얼처럼 물거품이 되었는지도.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걸 내던지는 용기도 훌륭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키는 일 또한 멋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치의 차이겠죠.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제 이야기에서의 인간 에리얼은 자유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선택을, 동화 속 인어공주 에리얼은 사랑을 위해 목소리와 가족을 포기하는 선택을 합니다. 둘 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하더라도 그런 용기가 때로는 부럽습니다.

'선택' 에는 옳고 그름이 있다기보다 용기와 책임이 따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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