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윤아 Oct 25. 2023

짐작이 단정이 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짐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곧 단정이 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말을 아끼기 시작하면서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나는 나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하고 단정해버리고 만다. 그 사건이 원래 사실이었는지, 마음에서 사실로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냥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마음이 다치기 전에 스스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래놓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정말 괜찮지가 않은 거다. 마음을 다친 일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냥 차곡차곡 돌탑 쌓듯이 마음에 올려진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오면 탑을 우르르 무너진다. 이성을 붙잡지 못한 마음속 분노와 함께... 제때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한 결과는 이렇게 엉망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물론 매번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배려였고, 내가 참으면 평화가 있었고, 점점 내 생각에 갇혀 상대방 마음이 다칠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것도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최근 감정에 대한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내 감정에 대해 자각을 하던 시기였는데, 글을 읽고 머리가 띵했다. 참아서 속병이 나고, 마음에 담아서 생각하는 나를 보자니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이제 표현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말을 하겠다고 두 손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행동보다 말이 쉽다고 했던가. 결심이 무색하게 곧바로 부작용이 생겼다. 현재 상황에 집중하고 발생한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 감정이 과거까지 끄집어 내버린 것이다. 결국 작은 일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상대도 나도 기분이 많이 상한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너 때문에 지금까지 속상했으니까 너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이해해야 해.'


내 속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불편한 감정에 대해 표현하지 않다가 갑자기 과거의 감정에 대해 말하니 상대도 적지 않게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좋지 않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그렇게 겉돌았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사실 좀 더 지혜롭게 말할 수는 없었는지, 금방 후회했다. 나는 지금 정당방위를 한 거라고 외치며 상대방에서 같은 상처를 준 셈이다.


인생의 중심에 나를 둬야 하는 것은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받은 만큼 돌려준다며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한 나는 정당한 걸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내 마음에도 스크래치가 난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서로 물러서는 대화가 아니라 한발 다가서는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그전에 내 마음이 좀 더 단단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밖에 난 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