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일기
나도 모르게 하는 반사 행동은 경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랑에 주저하면 상처받은 경험이 있을지 모르고, 화를 내는 사람에게 움찔하는 것은 어릴 적 부모가 화내는 모습이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갈등을 피하는 사람은 갈등으로 상처가 있을 수 있고, 참는 게 습관인 사람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문제든, 누구나 다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건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문제다. 의식보다는 무의식적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내면의 상처는 행동과 연결된다. 아이는 엄마에게 크게 혼난 경험이 있어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갑자기 방 정리를 하고, 잔소리로 상처를 받은 딸은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내가 젓가락을 짝 맞추어 먹으려는 습관에도 어릴 적 트라우마가 숨겨져 있다. 아마 평생을 따라다니며 젓가락을 짝 맞추는 이상한 사람으로 각인될 것이다.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은 흘러간다. 그렇게 그냥,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나에게도 무의식이 지배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문제가 있다. 내 인생의 결핍.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고, 주말에는 해묵은 청소를 하고, 늦잠 자고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핍이라는 게 진짜 무서운 아이다. 실패해서 더 무섭지만 더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그래서 나에게는 사랑이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배려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생각이 취미고, 짐작을 단정하는 나는 매우 피곤한 성격이다. 사주에 수가 많아서 그런가, 의도하지 않아도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흘러야 하는데 생각에 생각이 더해진다. 이런 내가 나도 힘든데, 내 주변 사람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가끔 불안한다.
내 내면의 나는 괜찮을까?
너는 괜찮니?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은 자기 연민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로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본다.
참 힘든 2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