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 모든 걱정을 짊어지고 살았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을 때는 참 좋았는데,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다툼도 참 잦았다. 그 다툼에 인지하기 시작한 때가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지금도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릴 적 기억이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외갓집에서 외할머니랑 민화투를 쳤던 기억, 점심을 먹는데 내가 젓가락을 짝짝이로 들고 먹으니 할머니가 복 달아난다고 말했던 기억, 그리고 그날 집에서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본 기억. 그 뒤로 나는 젓가락은 꼭 짝을 맞춰 먹는 징크스가 생겼다. 그리고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차선 도로를 건너다 났던 교통사고 기억,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그 시절의 동생의 사고는 집안의 큰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건 엄마 탓이라 말했던 아빠의 모습과 우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부엌에 앉아 엉엉 우는 나를 달래던 언니 친구도 기억에 난다.
그리고 어릴 적 우리 집이 여러 개의 장사를 했었는데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런 탓에 나는 철이 빨리 들었다.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그건 나의 고질적인 병이다. 눈치가 너무 빨라서 눈치가 없는 척해야 하는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 이런 단편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상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머릿속에 숨어있는 기억들. 대체로 좋았던 기억보다 슬펐던 기억이 더 많다.
어릴 때 겪었던 크고 작은 내 인생의 사건들은,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면 이때다 싶어 튀어나와 나를 괴롭힌다. 나는 안다. 이 기억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거라는 것을.
트라우마는 그런 거니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기억의 짐들은 짊어지고 살고 싶지 않다. 경쾌하게 살고 싶다. 일분일초 앞으로 다가오는 내 시간들은 춤을 추면서 살고 싶다. 명랑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오랜만에 몸살을 앓고 나니 머리가 맑아진다. 머리가 아프니 몸에서 쉬라고 신호를 보낸 걸까, 미열과 근육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신속 항원 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음성, 대신 몸살 약을 처방받고 집에 와서 꽤 오랜 시간 잠에 취했다. 사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생각이 나를 더 병들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비워내는 게 나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걱정 가득한 엄마의 전화,
안부를 물어봐 주는 언니,
엄마 걱정을 안 한하는 것 같다는 투정에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는 둥이.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
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