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한지 두 달이 지났다. 18년 만에 첫 이직이었다. 매일 만나던 사람, 매일 가던 길, 매일 가던 사무실, 매일 보는 프로세스, 난 모든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회는 삶의 일부다. 18년 다닌 나의 회사는 이미 나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 분류되어 있었다.
그런 익숙함에서 벗어나 타인의 공간에 소속이 됐다. 처음 보는 사람, 처음 가는 길, 처음 가는 사무실, 처음 보는 프로세스, 내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원하는 포지션이 명확했다. 18년 차 노하우를 레버리지 하는 것. 부담감은 내 몫이었고 난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거짓말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하루는 괜찮다가, 다음날은 다시 어렵고, 어떤 일이 괜찮다가도, 물음표가 가득한 일이 되기도 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긴장감마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대단하게 해낸 일은 없지만 익숙함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익숙함 안에서 여전히 적응이 힘든 일이 있다. '회의'다. 난 '회의'에 회의적인 사람이다. 팀 회의는 안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았고, 머리를 맞대고 모여 해결되지 않을 회의는 다른 방법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전 직장에서도 회의가 참 많았다.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 정말 지긋지긋했는데 다른 회사들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회사들은 왜 회의를 좋아하는 건가...?)
이직하고 한 달이 지나니 각종 회의의 고정 멤버가 되기 시작했다. 어떤 회의는 주관을 해야 하고, 어떤 회의는 한 시간을 경청해야 하고, 어떤 회의는 회의를 하기 위한 회의를 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회의이고 어떤 목적을 가진 회의인지 공감이 없는 채로 참석하니, 내 시간만 빼앗는 회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필요한 생산적인 회의도 분명히 있겠지만,,,, 이런 쓸모없는 회의만 없어도 주 4일 근무로도 사회는 굴러가지 않을까?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난 근로자고 회사에서는 급여에 상응하는 업무를 시킬 권리가 있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일, 웃으면서 상대와 협업을 해야 하는 일, 이럴 때 난 어른이 됐음을 실감한다.
이런게 어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