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성실함에 대하여.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라는 책을 읽었다. 시노다라는 사람이 90년도부터 2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자기가 먹은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해 대학노트 마흔여섯 권을 모았다고 한다. 최근 그 노트들을 추려 책 한 권이 나왔다.(삽화책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미식 일지라고 하는 게 맞을까?)
누구나 삼시 세 끼를 먹는다. 숨만 쉬어도 누구나 나이를 먹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아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다. 하지만 그 일반적인 행위에 '성실함'을 더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경외해 마지않는 창작물이 되는 것이다.
SNS 팔로워 중에 매일 해돋이를 촬영해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덕분에 매일 도쿄의 아침과 간혹 오사카, 샌프란시스코, 서울의 아침을 침대에 누워 구경했다. 2,000일 넘게 계속 게시물을 올리는 중이고 하루에 5장 정도를 찍었다 하니 대략 1만 장의 사진이 기록으로 남았다.(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그를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나 그가 회사를 차리든 커피집을 운영하든 택시를 몰든 그 무엇을 해도 될 사람이라는 확신이 드는 건 5년을 넘게 지속해온 '성실함'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많은 요즘,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니'내 인생에는 성실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흥미가 솟아나는 일은 수두룩 빽빽이 었으나 그 관심은 채 열흘, 한 달을 가지 못했고 무언가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자아-랑이다) 잦은 흥미와 잦은 무관심 덕분에 침 묻혀 살짝 대기만 해도 금방 뚫리는 습자지 같은 지식을 가졌다.
'성실함'은 다른 말로 '열심히'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30년을 넘게 산 나는 도대체 뭘 열심히 해본 기억이 없다. 그저 자기 전에 '내일 뭐 먹지?' 집을 나서며 '오늘 뭐 먹지?' 등의 일상적인 식욕에만 관심을 주었던 것 같다. 그간의 인생을 후회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당최 뭐가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도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바로 내가 오늘 먹은 것의 기록.(그래. 표절이다!) 음식은 늘 내 주된 관심사이니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이고 그저 기록하기만 하면 된다.
시노다 과장처럼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해봤으나 거창하게 시작하면 늘 망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먹기 전에 구도를 맞춰 사진을 한 장 찍고 음식의 맛, 그날의 기분 등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려고 한다. 지인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곳이면 정보도 필요하니 상호와 주소 정도도 함께 기록하려고 한다. 삼시 세 끼를 먹는 성실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으니 두시 두 끼와 커피, 맥주 한 잔 정도의 기록이 남을 예정이다.
내 인생에도 성실함이 자리할 수 있는지 나를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한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커버 이미지는 나의 소울푸드인 떡볶이와 어묵 그래픽 이미지. 외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길거리 음식을 보고 만들었다고 트위터에서 보고 저장해 놨는데 아티스트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