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내 나이 47. 그해 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아들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또 딸로 사느라 난 가족 안에서 늘 누군가의 조력자였다. 좋은 엄마, 착한 사람이라는 딱지는 조력자의 삶을 기꺼이 감래 하게 했다. 그렇게 이십 년의 시간이 흘러 조력자의 삶이 더는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어느 글쓰기 교실 문을 두드렸고, 그날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가 되리란 생각은 1도 하지 못했다. 작가란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안드로메다 같은 데서 특수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 같은 무지렁이가 감히.
글쓰기 수업은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오는 게 숙제였는데, 주입식 교육을 평생 받아온 나에게 숙제는 꼭 해가야 하는 거다. 그러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숙제를 했고, 그 숙제를 오마이뉴스에 내라는 선생님(은유 작가님)의 코멘트에 따라 오마이뉴스에 글을 냈다. 그리고 얼마뒤 난 오마이뉴스 편집자로부터 연재를 제의받았다. 무지렁이에게 연재라니, 이건 필시 보이스피싱이거나 혹시 다른 사람과 착각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명랑한 중년이라는 연재가 시작되었고, 난 연재뿐 아니라 영화, 책, 드라마 리뷰까지 쓰면서 리뷰계의 갓 하연이란 말까지 떠돌았다. 내가 리뷰를 쓰면 책도 팔리고 영화도 팔린다나 어쩐다나.(주작 아님, 확인할 길 없지만) 그리고 난 다음 해인 2018년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상(시민기자 대상)을 받았다. 꿈이냐 생시냐.
이후 그간 연재했던 것들을 모아 책도 세 편이나 냈고, 무대극도 한편을 썼다. 그 사이 미술이나 음악분야 강사도 되었다. 내가 서는 무대는 주로 교육청이나 도서관. 난 태생이 무대체질이었는지,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게 재밌기만 했다. 에세이로 시작한 글은 미술, 음악 이야기까지 확장되었고, 그런 시간이 쌓여가면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이 뭔지 알아갔다. 바로 드라마와 영화.
오십이 다 되었을 때 난 방송작가 아카데미 문을 또 두드렸다. 주로 드라마 작가님들이 강사로 활동하셨는데, 모두들 나와 나이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당연히 학우들 사이 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지금 시작해도 될까? 이 바닥은 특히 나이 든 작가 싫어한다는데, 잘 나가던 드라마 작가들도 오육십이 되면 모두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로 간다는데, 카더라 카더라 통신은 나를 더욱 위축시켰다. 이 나이에 배워서 미니시리즈 입봉이나 할 수 있을까?
첫 책으로 냈던 다락방 미술관이 베셀에 오르면서 다락방 미술관 2를 내자는 곳도 많았고, 다른 에세이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난 모두 고사했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내가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이라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야지 미련이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시작된 도전. 6개월 동안 기초반에서 드라마 작법을 배우고 그다음반에 올라가 또 6개월 동안 단막을 한편 완성했다. 그리고 또 그다음반에서 6개월 동안 단막을 또 연습. 총 2년 코스인데, 난 일 년 반을 다녔다. 때마침 아파트란 가극을 쓰게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아파트가 공연되고, 무대 인사를 올라간 난 만감이 교차했다. 마음고생, 몸 고생, 참 어렵게 썼기 때문이다.
방송작가 아카데미에서 단막만 다뤘기 때문에 미니시리즈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다른 미니를 보며 연구하고 분석했다. 드라마를 쓰는 일은 그 자체로 내겐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 안에서 울고 웃고, 신나게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라 밤에도 잠이 안 왔다. 기획에서 시놉시스, 대본 두 개, A4 용지 약 백여 장 되는 것을 두 달이면 썼다. 날마다 내 안의 샘에서 이야기들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타인에겐 재미가 없었는지, 번번이 공모전에 떨어졌다. 그 와중에 유명한 드라마 피디님께 발탁되어 넷플릭스나 방송국에 내 대본이 넘어가기도 했지만 퇴짜 맞았다. 자꾸 떨어지니까 동력도 함께 떨어졌다. 떨어진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또 다른 이야기를 썼고, 그 이야기에 몰입해 가며 간신히 동력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나는 얼마 전 드디어 어느 제작사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 칸 영화제 대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만큼 행복했다. 나이체계가 바뀌면서 두 살이 어려진 나는 오십 두 살이 되었다. 그러니 오십 두 살에 드라마 당선이 된 것이다. 물론 당선이 되었다고 제작이 되는 것도, 편성을 받는 것도 아니다. 제작을 위해, 편성을 위해 지금부터 또 전쟁인 것이다. 되건 안 되건 그건 내 뜻이 아니니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오직 쓰는 일에만 집중할 뿐. (이건 여러 번 떨어지면서 얻은 교훈)
나는 겨우 조금 팔린 책 몇 권을 냈을 뿐이고, 당선된 드라마도 제작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어떤 성공담일리 없다. 다만 어떤 일을 앞두고 나이 때문에, 이 나이에 도전해도 될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도전하시라고, 함께 도전하자고, 말해주고 싶다.
얼마 전 댄스가수 유랑단이란 프로그램을 봤는데, 50대에도 댄스가수로 여전히 건재한 엄정화와 김완선을 보며 뭔가 뭉클했다. 없던 길을 개척해 길을 만드는 사람들. 누군가 만든 길이 있으면 뒤따르는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용기를 얻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