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양연화 Jan 04. 2019

누구에게도 무해한 사람, 진짜 있었네.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인천지역 주간지에 ‘그림의 말들’을 연재 중이다. 작가별 미술작품 몇 점을 선별하여 작가 이야기 및 감상을 적고 있다. 연재를 시작한 건 6개월이 넘었지만 편집자에게 전자우편으로 기사를 보내기만 할 뿐 신문사의 누구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지난주 그가 신문사 15주년 기념식에 외부필진 자격으로 초대하고 싶다며 전화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곳인지 궁금하던 차에 연락이 와서 흔쾌히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겠다’고 약조했다.    

 

‘자리를 빛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드레스를 입고 가는 건 좀 오버고 처음 뵙는 자리에 뭔가 성의 있는 모습으로 가고 싶었다. 고민 끝에 펌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머릿결이 좋지 않아 십 년 동안 펌을 안 했다. 변화가 없어 지루했는데 이번 기회에 도전. 패션잡지에 나온 예쁜 머리를 한 모델 사진을 들고 친구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갔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자르고 돌돌 말기 시작했다. 다 말고 나서 머리에 스탠드 갓 같은 걸 쓰고 있으니 기대도 되고 좀 웃기기도 했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머리를 풀었다. 머릿결 때문인지 얼굴이 문제인 건지 잡지와는 매우 다른 형태가 나왔다. 너무 정성껏 말은 탓에 앞으로 십 년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빠마가 나왔다. 펌이 아니다. 머리를 해준 친구가 허둥거린다. 나는 서로 민망할까 봐 “괜찮네, 펌이 잘 나왔어.”역시 허둥거리며 미용실을 나왔다. 집에 와서 거울을 자세히 보니 자리를 빛내지는 못해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순 있을 거 같았다.  

    

그곳에 글을 쓰게 된 건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학인 덕택이다. 내게 아주 고마운 사람. 눈망울이 선한 그녀는 이미 7전부터 그곳에 글을 싣고 있었고 그녀의 추천으로 나도 글을 싣게 된 거다. 그녀의 글은 스펙트럼이 넓다. 신변잡기적 이야기에 요리를 곁들인 요리 에세이와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과학 이야기뿐 아니라 정치, 사회, 페미니즘까지 아우르는 글을 썼다. 요즘 글이 안 써져 슬럼프라는데 읽는 나는 매번 놀랍다. 기념식 당일 우리는 낮에 만나 영화도 보고 예쁜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그리고 시간 맞춰 신문사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퀴즈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맞추면 경품이 우수수. 난센스 문제와 상식문제가 번갈아 나왔고 재밌었다. 진행을 맡은 사람이 내 글을 편집한 분이라고 동행한 그녀가 말했다. 그의 7080 옛날 유머에 웃다 보니 퀴즈는 끝났다. 나는 하나도 못 맞혔고 속상하게 경품도 못 받았다. 본사 직원들, 칼럼이스트, 만화 만평가, 외부필진 등 모두 30-40명 정도 모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편안한 분위기에 연령층도 다양했다.  

    

그동안 신문사가 유지되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준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한 마디씩 했다. 여태까지 해 온 것처럼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서 권력에 물러서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신문사로 성장하자며 서로 독려하고 다짐했다. 이럴 땐 왜 자꾸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지. 정식직원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그저 문화면에 작은 글 하나 쓰는 주제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인 한 분이 앞으로 나가더니 시를 한편 써왔다며 낭송했다. 창간 15주년을 축하하는 시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다. 제목이 ‘착한 사람 승희’다. 익숙한 이름. 내 글의 편집자 그 이승희. ‘제목이 곧 내용’이란 말은 이런 것.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듣고 있자니 살짝 웃음이 났다. 옆을 슬쩍 보니 맙소사, 내 옆의 그녀가 울고 있다. 나를 그 신문사에 소개한 그 학인 말이다. 송아지 같이 동그란 눈이 벌겋게 변하더니 맑은 우박을 뚝뚝 떨궈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 빼고 모두들 공감의 고개 끄덕이기를 쉴 새 없이 반복했다. 이건 뭔가 교회 부흥회 분위기. 시가 끝나고 하마터면 ‘아멘’이라고 할 뻔했다. 고개를 돌려 승희 씨를 보니 그 착하다는 승희 씨는 하필 감동적인 순간에 전화가 와서 통화 중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전화를 받는 폼이 좀 착해 보인다.     

 

대학 때 총 학생회장 출신이라는 그는 “편집국장이 필요하면 편집국장을 하고, 사장을 구하지 못하면 사장을 하고, 사장이 새로 오니 편집국장을 하고, 편집국장이 새로 오니 논설실장을 하고, 그래도 자기는 마음이 편해서 좋다는 승희”(착한 사람 승희 중) 이런 사람이란다. 아마도 그는 물 같은 사람 인가보다. 바다로 나가면 바닷물이 되고 그릇에 담으면 마실 물이 되는.     


직원들과 후원자들이 모여 MT라도 가면 그는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치다꺼리를 하고 아침이면 젤 먼저 일어나 해장국을 끓이고 남은 김치로 전을 부쳐 아침을 차렸다. 신문배달에서 사장까지, 그의 희생과 고생을 7년 넘게 봐온 학인은 옛날 생각에 젖어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덩달아 뭉클했다. 삶 자체로 주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이 인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개인주의가 외려 미덕으로 여겨지는 21세기에 이런 주옥같은 인간이 있었다니.     


매력은 주로 톡 쏘는 독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나쁜 남자나 장미의 가시처럼. 이런 매력은 처음엔 강렬해서 시선을 끌지만 너무나 날카로워서 가까이 갈수록 다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 계속 듣다 보니 뭔가 순두부 같은 매력이 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준비된 저녁을 먹었다. 그는 와인 병을 들고 빈 잔이 보이는 곳에 리필을 하고 다녔다. 누군가 와인의 도수를 묻자 쓰고 있던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려 인상을 찌푸리며 잔글씨를 읽는다. 그걸 보니 그는 50대 전후인 거 같다. 저 나이까지 때 묻지 않는 원동력은 뭘까. 비단 삶은 물로 밥을 해 먹나?( 구구절절 마음이 실크로드)    

 

시간이 열 시를 넘어 서둘러 나오는데 그가 보이지 않는다. 인사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백미러를 보며 후진을 하려다 “아 깜짝이야.” 나를 놀라게 한 ‘빠마 귀신’은 바로 나다. 부스스한 머리에 입가에 초고추장이 번져 베트맨의 조커 같다.    

  

사람을 한 번 보고 어떤 사람인지 단박에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오늘 그를 20여 년 지켜봐 왔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가 어떤 사람임을 보여준다. 인간관계에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사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유연한 사람, 기꺼이 궂은일을 도맡는 사람. 그래서 그 조직의 기둥이 되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은 삶 자체가 울림이다. 옆에 서면 거울처럼 나를 비추며 내 마음속 선한 것을 일깨워주는 그 누구에게도 무해한 사람.   

 

원고료 인상을 약속받은 것도 아닌데 오늘은 괜히 마음이 부자 된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재산이니까. 그리고 다음에 이런 자리가 생기면 반짝이 의상이나 미러볼을 들고 가서 자리를 빛내줘야겠다. 나도 나를 보며 놀라는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호사의 이런 일, 사람들은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