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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May 05. 2019

미미와 함께 산 지 10년,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세월이 흘러도 왜 이별은 늘 뜻밖의 일이 될까.

강아지 미미와 미나가 가족이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미미는 흰색 푸들이고 미나는 갈색 포메라니안이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우리 집에 왔다. 미미는 활발하고 밥도 잘 먹고 셈도 많고 무엇보다도 감성이 풍년이다. 단조 곡만 흘러나오면 두고 온 고향이 그리운지 하울링을 엄청나게 한다. 미나는 반대다. 미미에 치여 항상 멀찌감치 앉아있고 밥도 새 모이처럼 겨우 몇 알갱이 먹는다. 미미는 4㎏, 미나는 2㎏이니 미미가 미나의 두 배다.      

겨우내 미미와 미나는 집에만 있었다. 날도 춥고 미세먼지도 많은 게 주된 이유지만 솔직히 나가기 귀찮은 핑계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난히 작고 연약한 미나는 다리에 힘을 점점 잃어 미끄러운 마룻바닥을 잘 걸어 다니지 못했다. 걷기 편하여지라고 요가 매트를 거실 곳곳에 깔아 놓았지만,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온종일 누워있거나 가족들 품을 전전했다.      


날이 풀리고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 3월 1일부터 나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산책에 나섰다. 아파트 뒤에 작은 산이 연결되어 있어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직은 쌀쌀하니 아이들 옷을 입히고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강아지 배변을 치울 휴지와 비닐봉지를 작은 가방에 챙긴 후 아이들 목줄을 채운다. 아이들은 목줄만 봐도 BTS를 만난 듯 흥분한다. 빨리 자기 먼저 목줄을 채우라고 머리를 서로 들이미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겨우 준비를 마치고 승강기에 오르면 아이들은 문 앞에 바짝 서서 대기한다. 문만 열리면 밖으로 튀어나갈 기세다.     


산에 오르는 길, 하루하루가 다르게 꽃이 피어나고 새잎이 돋아난다. 갈색에서 연두로, 연두에서 초록으로, 이렇게 금방금방 옷을 갈아입는 산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마리를 한꺼번에 산책시키기는 간단치가 않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줄이 엉키거나 때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출발하고 이십여 분 동안은 배변을 치우랴 엉킨 줄을 풀랴 어수선하다. 그 후론 신기하게 아이들은 줄이 꼬이지 않게 서로를 봐 가며 보폭을 맞춘다.      


30~40분 산길을 걷다 보면 앉아 쉬기 좋은 지점이 나온다. 아이들 목줄 손잡이를 가까운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나도 아무 데나 걸터앉아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을 낮게 틀어놓는다. 그리고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마신다. 아이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봄의 냄새를 만끽하고 나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나만의 ‘산타 벅스 카페’를 만끽한다.     

피아노 연주와 새소리와 아이들이 밟아서 내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어떤 앙상블보다도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 놓는다. 혼자 듣긴 아깝지만 그렇다고 나누고 싶지는 않은 이 평화롭고 고요함. 나는 되도록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은 주로 걱정이니까. 어떤 생각에 빠져들어 이 행복을 놓칠까 봐. 오로지 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      


실컷 탐방을 끝낸 아이들이 내게 모여들어 뒷발을 구른다. 인제 그만 출발하자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나도 마지막 남은 커피를 원 샷 하고 아이들과 다시 산에서 내려온다. 갈 때와 올 때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아이들은 길을 다 알고 있어 앞장서서 항상 나를 이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뒷모습은 얼마나 귀여운지 나는 참지 못하고 매번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3주 정도가 지나자 미나는 마룻바닥을 잘 걸어 다니더니 지금은 뛰어다닐 정도로 다리 힘이 좋아졌다. 문제는 뜻밖에 미미에게 찾아왔다. 나는 처음엔 미미가 관심을 더 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동안 종종 그래 왔으니까. 미미는 내가 조금이라도 미나를 더 챙기는 것 같으면 여지없이 내 방에 들어와 실례했다. 미미의 복수는 내 방에 오줌 싸기. 그리고는 내가 엎드려 닦는 걸 보고 있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눈빛으로.      


애교도 많은 미미는 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얼마나 서둘러 뛰어나오는지 꼭 넘어진다.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아이고 천천히 와, 다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도 쪼그려 앉아 두 팔을 벌리고 미미를 안을 준비를 한다. 얼마나 격정적인지 로미오와 줄리엣도 울고 갈 판이다. 매번 나를 향한 사랑이 뜨거운 우리 미미. 아무리 밀어내도 엉덩이를 꼭 내 몸 어디라도 대고 앉는다. 내가 말을 걸면 꽁알 꽁알 하며 대답도 하니 대체 정체가 뭔지 싶을 때도 있다.    

 

그랬던 미미의 행동이 좀 이상해졌다. 뭔가 불안한 표정, 멍한 얼굴, 밤에는 잠을 안 자고 낑낑대더니 부르는 소리에 대한 반응이 점점 느려졌다. 인지장애가 시작되었다. 수의사의 조언을 들어보니 최대한 늦추는 방법은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해 새로운 곳에 데려가 산책을 하는 거란다. 미미의 인지장애를 격하게 부정하며 연기라고 우기던 두 아들도 마침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밤에 낑낑대는 미미를 내 침대로 데리고 왔다. 미미는 내 품에서 숨소리를 거칠게 내쉬며 잠들었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미미를 바라봤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겠구나. 

    

아침이 밝아오고 미미와 미나에게 밥을 주고 나갈 준비를 했다. 다시 나서는 산책길. 미미가 자꾸 두리번거린다. 십 년을 다니던 산책길인데. 나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미미에게 말을 건다. “바보 미미, 아직 길도 몰라?” 그런데 내 목소리는 자꾸 갈라지고 기다랗게 떨린다. 미나는 늘 그렇듯이 가만히 서서 미미를 기다리고 그 아기 사슴 같은 눈동자로 나를 위로한다.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린다. 아직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 시간마저 마침내 다가올 슬픔에 미리 넘겨주고 싶지 않다. 쉬기 좋은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은 봄에 취하고 나는 볕에 취한다. 오늘의 선곡은 안 슬프고 이름다운 곡인 쇼팽의 즉흥환상곡. 턱을 괴고 앉아 아이들을 바라본다. 뒷발을 구르기 시작하니 다시 하산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 발을 씻기고, 말리고 물과 간식을 챙겨준다. 미미는 꼬리를 내리고 빙글빙글 돌더니 누워서 멍을 때리기 시작한다.      


출근하던 남편이 미미를 보고 다녀올 테니 잘 있으라고 인사를 하고, 아들 둘도 시간차로 나가며 미미 이마에 뽀뽀한다. 미미는 우리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면벽 수행을 할 뿐이다.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의 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미미가 찢어놓은 벽지, 미미 냄새나는 소파, 미미의 흔적이 가득한 이 집에서 미미가 없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무리 깨어 있으려 노력해도 현실을 온전히 산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 바보같이 나는 매시간, 매분, 이별이 오기도 전에 이별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또 나를 마주한다. 살아도 살아도 이별은 늘 뜻밖의 일이 되는 나약한 나를.      


잔나비 노래를 들었다. 첫 소절이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이런다. 나는 다치기 쉬운 마음이다. 그러니 이별도 슬픔도 머물지 말고 훑고 지나가길. ‘스윽’ 그렇게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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