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드라마 속 주인공.
근처에 사는 대학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가까이 사는 것이 인연이 되어 15년 가까이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때로는 켜켜이 만나는 삶의 무거운 조각들을 나누고 있다.
점심때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아침 9시에 친구 A가 집으로 찾아왔다. 밤새 이것저것 쓰느라 잠을 설친 나는 수면바지 차림으로 문을 열어주고 눈곱을 붙인 채로 커피를 내렸다. 직장을 다니는 A가 오전 반차를 쓰고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온 건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거다. A는 고민을 털어놨고, 나는 A가 고민을 다 쏟아 놓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모든 문제들은 대체로 이미 스스로 답을 알거나 말하는 중에 답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커피 잔이 비어 갈수록 한숨과 함께 밀려 나온 고민들이 테이블 위에 가득 쌓여갔다.
일찍 품을 떠나 살림을 차린 딸 이야기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20살에 엄마가 되었다. 동갑내기 아기 아빠와 아기 엄마는 ‘사고 치고 집을 나와 각자 가족을 등진 죄’로 양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 A는 부모와 가족을 버리고 간 딸이 용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연을 끊고 살았다. 다시 딸을 만난 건 최근이다. 딸이 먼저 연락해왔고 딸을 만나러 나간 자리에 인형 같은 아이가 같이 앉아 있었다.
아기는 네 살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 처음 딸이 살고 있는 원룸을 방문했다. 7평 방에 세 명이 사는 그곳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젊은 부부는 투잡 쓰리잡 알바를 해보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갈수록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댈 곳도 마음 붙일 곳도 없는 이들에게 퇴로는 없다. 딸을 만나고 온 친구의 마음은 다시 지옥이 되었다.
‘니 선택이니 네가 책임져’라는 복수심(?)과 딸에 대한 안타까움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아기를 키우느라 청춘을 저당 잡힌 딸이 아깝고 밉고 원망스럽고 아프다. 친구는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고 나는 커피를 한 바가지 마셨다. 휴지를 A옆으로 밀며 말했다. “조금 빠른 것뿐이잖아. 빨라서 좋은 점도 있을 거야.”
울고 난 친구가 화장을 고치는 동안 나는 양치와 세수를 했다. 씻고 나오니 A는 격한 감정이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조금 빠른 것뿐인데 왜 나는 용서가 안 되는 걸까.” 나는 A에게 위로가 됐음 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친구 가방에 넣어 줬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약속한 식당으로 나갔다. 친구 C와 D가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이 하도 매워서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접시는 텅 비어있었고 친구 A는 언제 울었냐는 듯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역시 매운 주꾸미는 힐링푸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친구 B가 입을 열었다. 커밍아웃한 딸의 이야기다. 지난달 나는 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 B에게 ‘딸에 대하여’란 책을 선물했었다. 책을 다 읽은 친구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내게 톡을 보내왔었고 우리는 한참 톡을 주고받았었다. 이제 딸의 커밍아웃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지만 눈앞에서 딸이 애인과 함께 있는 모습은 여전히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큰딸이 남자 친구와 인사 왔을 때는 예쁜 사랑 하라고 응원해줬는데 커밍아웃한 둘째 딸한테는 도저히 예쁜 사랑하라는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나는 B의 등을 문지르며 ‘딸을 이해하려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며 노력하는 아주 좋은 엄마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좋은 엄마가 될 거라며 치즈케이크를 듬뿍 찍어 친구 입에 넣어 주었다. 친구는 엉겁결에 받아먹으며 너 때문에 더 살찐다고 난리다.
친구 A는 일하러 가고 친구 B는 수업이 있다고 갔다. 나는 친구 C와 집에 왔다. 친구 C와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동거한 각별한 사이다. 나는 지금 4년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23살 큰 아들과 재수를 시작한 작은 아들을 돌보고 있다. 이런 내 하소연에 C도 가슴속에 박혀있는 돌덩이를 꺼내 놓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오늘은 무슨 날인가 보다. 우는 날. 나는 친구가 많이 울어서 진이 빠질까 봐 틈틈이 한라봉을 까서 친구 입에 밀어 넣었다.
기, 승, 전, 갱년기인가. 마음이 아팠다. 친구가 눈물을 닦자 시계를 보니 7시가 넘고 있었다. C는 서둘러 외투를 입었다.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C는 내게 ‘언제가 가장 눈부신 때’였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이라고 답했다.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C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나는 지금 노안 때문에 눈이 아주 시고 부셔서 못 살겠다고 했다. C는 빵 터졌다. 내친김에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상담료 받을 거야.”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상담료라며 캐러멜 하나를 차에 두고 내렸다. 캐러멜을 까서 입에 넣었다. 진하고 달고 슬프고 아팠다. 오늘 하루 같았고 살아온 인생 같았다.
C를 내려주고 출발하는데 신호대기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C도 횡단보도 앞에 섰다. 차 창밖으로 보이는 친구의 모습은 낯설었다. 풋풋한 20살에 만나 50이 된 친구는 어느새 초라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있었다. 순간 울컥했다. 여태 잘 참았는데. 나는 창문을 내렸다. C는 허리를 숙여 나를 보았다. 우린 3초간 눈빛을 교환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염화미소 같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창을 올리고 출발했다. 집에 돌아오니 기진맥진했다. 열 시간을 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열 시간을 울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살고 있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갈등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것만 해결되면 금세라도 올 것 같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 순간은 비 온 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때때로 찰나로 왔다가 사라졌다. 가슴속에 이고 지고 오느라 무거웠을 이야기들이 기어이 입 밖으로 나오고, 돌아가는 길에 흐린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간처럼 짧게. 그리고 다시 드라마 속으로.
몇 시간 후, C에게 고맙다는 톡이 왔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계좌이체만 한 게 없다’고 언질을 줬다. 내 둔탱이 친구는 농담인 줄 알고 웃기만 했다.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 안에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내 일을 하며, 그 사소한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눈이 부신 순간인지, 갈등조차도 그런 시간일 수 있음을 내가 꼭 기억하길, 내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