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친구가 별로 없는데 다행히도 다들 일당백이다. 그리고 자주 모이지도 않고 멀리서 관망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점조직처럼 움직인다. 김치 없다고 하면, 다음날 택배 아저씨가 카트 두 대를 끌고 온다. 순식간에 반찬 만수르. 간장게장, 전복장, 한우 꽃등심, 랍스터는 없다.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고추 장아찌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책이 안 팔린다고 하면 오십 권을 사주는 친구가 무려 두 명이다. 한 명은 보험 약관 대출을 받았다나? 그냥 그 돈을 주지,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최소 백 권은 팔리는 거다. 근데 그거 다 어디에 쓰려고…. 라면 받침으론 하나면 되는데. 알라딘에 중고로 파나? 혹시 쌓아놓고 젠가 게임?
얼마 전엔 평생 가장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다. 작곡하는 친구가 전화해서 내게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하필 강아지 미미가 달려들어 밟을까 봐 피하려다가 자빠져서 울고 있는데 전화가 온 거다. 난 있어 보이려고 비가 와서…. 라고 했다.
다음날 메일을 열었는데 곡이 와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인생곡이었다. 제목은 To moon. 그 밑에는 “힘들지? 힘내라고 쓴 곡이야.” 진짜 울 뻔. 듣는 동안 계속 전율이 일어서 한 손으로 대패를 들고 소름을 깎아가며 가사를 썼다. 나중에 드라마 쓰면 OST로 쓰려고 저장. 이렇게 저장해둔 OST만 스무 곡이 넘는다는 게 함정. 이제 제발 드라마를 쓰자.
새로 나온 책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카피에는 아프고 흔들리는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이라는 문구가 있다. 근데 제 처방은 의료보험이 안 돼요. 비급여에요. 자꾸 보험처리 해달라시는데 곤란해요. 저 호모무면허쿠스 거든요. 서점에 의료보험 카드 가져가서 떼써도 소용없어요. ( 옛날 사람 인증) 얄짤없이 돈 다 내야 해요.
벌써 책을 읽은 사람들이 연락을 보내온다. 웃다가 울다가 진이 빠졌다고 하소연하는 사람. 밤새 읽느라 동이 트는 줄도 몰랐다가 출근해서 좀비 됐다는 사람. 하긴 우리 나이에 밤새고 그러면 안 돼요. 가장 인상 깊은 건 20대 남자다. 자기도 이런 책을 읽게 될지 몰랐다고 운을 떼며 웹툰 말고는 문자로 된 텍스트는 읽어본 적 없었는데, 이렇게 재밌고 술술 읽히는 책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거 혹시 내 아들들은 아니겠지? 차명 메일로 엄마 응원해 주려고? 정신 차려라. 그런 다정한 인간님들이 아니다. 소설 쓰지 말자. 쩝...
산삼을 먹었으니 먹은 값은 해야 할 텐데.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자려고 누우면 계속 생각나는 그런 울림이 있는 글을. 장마가 끝나기 전에 한 문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