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공연으로 선보일 대본 작업을 끝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 부디 무탈히 잘 만들어져 내년에는 전국의 공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해가 잘 드는 베란다에 책상을 내어두고 글을 썼다. 종일 써야 하는데 방안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란다에 나오니 몇 개 있는 식물들이 눈에 자꾸 걸린다.
먼지 묻은 이파리를 닦고, 물을 듬뿍 주는데 유난히 낡은 화분이 보였다. 이쁜 화분을 사다가 분갈이했다. 집에 벽지 새로 바르면 타일이 거슬리고, 타일을 바꾸면 페인트가 거슬리는 도미노 현상처럼 자꾸 걸리는 게 많아진다. 답답함을 피해 나왔더니 일거리가 태산이다.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 베란다에 나와 낮은 음악을 켜고 커피를 마시며 식물들과 몇 시간 사이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 평화로움을 즐기느라 한 시간이 간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 우울한 식물 하나를 골라 새 옷을 입혀준다. 오늘은 행운목이다.
베란다에 김장용 비닐을 깔고 행운목을 새 화분에 옮겨 심는다. 마무리로 흙 위에 하얀 자갈을 깔아주면 분갈이는 끝이다. 다시 비닐을 돌돌 말아 한쪽에 넣어두고 물청소를 한다.
물청소가 끝나고 드디어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강아지 미나가 저 멀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바닥이 젖어서 가까이 못 온다고 애가 타는 모양이다. 마른걸레를 들고 와서 바닥을 닦고 미나 방석을 내 옆에 바짝 붙이면 그제야 평화로운 얼굴로 내 옆에 눕는다. 이제 글을 써야 하는데 진이 빠지고 배가 고프다.
글을 쓰는 재능은 미미하나 나의 유일한 재능인 성실함과 불면증으로 밤낮없이 썼다. 낮에는 햇빛에, 밤에는 달빛에 타서 얼굴은 보라카이 자외선 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온 자의 얼굴이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래층 사시는 분은 승강기에서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통 안 보이더니 해외여행 다녀오셨나 봐요?" 하신다. 나는 그냥 웃었다. 다른 작가들은 영혼을 태워 글을 쓰는데, 난 얼굴을 태워서 썼구나.
▲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 문하연
그런 와중에 책이 나왔다. <오마이뉴스>에 '명랑한 중년'이란 타이틀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2년 가까이 연재하다 보니 글 양이 많았다. 글은 많고 페이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싣지 못하는 아까운 글들이 너무 많다며 출판사 편집자는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나는 <오마이뉴스>에 사는 이야기, 그림 이야기, 클래식 이야기, 크게는 이렇게 세 꼭지의 글을 썼다. 그중에 그림 이야기는 '다락방미술관'으로 이미 탄생했고 이번이 두 번째 책이다. '명랑한 중년'은 세 꼭지 중에서 가장 처음 시작한 연재이며 가장 응원을 많이 받은 글이기도 하다. 반면 욕을 조금 먹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독자들은 '사는 이야기' 코너를 이해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이 타인에게 울림을 주거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때 기사가 된다. 이 의미를 잘 모르는 포털의 독자들은 '제발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난리다.
그분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일기장에 쓰면 원고료가 안 나와요.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도 돈을 받냐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는데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도전을 권해 드려요. 아무나 쓸 수 있거든요.
시민기자가 쓴 글이 채택되면 소정의 원고료를 받는다. 말 그대로 소정이다. 게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용기를 내어 내 삶과 생각을 조심스럽게 한 조각 내놓고 5급 공무원 연봉에 해당하는 욕을 일시불로 먹으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심각하게 절필을 고민하게 된다. 이거 무슨 성과급도 아니고, 댓글 욕 상한제가 절실하다.
욕만 먹는 건 아니다. 고맙게도 어디선가 서포터즈가 코트 자락 휘날리며 나타나 나 대신 한 마디 해주거나 응원 메일을 보내주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또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했다.
'그만 쓰고 싶은' 마음과 '한 글자라도 쓰고 싶은' 마음 사이를 무던히 오갔다. 부대끼기도 했지만, 날 괴롭게 하는 것이 날 성장시킨다고, 그렇게 1밀리미터씩 성장했다. 성장에 성장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 몇 편을 오마이뉴스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삶의 변화가 생겼다. 그 글은 '명랑한 중년'이라는 연재로 이어졌고 이어서 내가 그간 공부해왔던 예술 분야의 글도 쓰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대본 공부에 매진, 가극까지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미술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고 인기도서가 되면서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그림에 대한 강의 제안도 받아 이번 여름부터는 줄줄이 강의도 잡혀 있다. 나비효과란 이런 것인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인 화양연화를 필명으로 쓰고 있는데, 진짜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시작된 셈이다.
'명랑한 중년'을 쓰면서 명랑하기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기쁨 하나를 주면 고통 열 개를 주는 게 인생.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의 성난 파도를 잠재웠고, 슬픈 뱃고동을 떠나보냈다. 순간순간 엄습하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했다.
벌어진 사건을, 또 그걸 바라보는 나를 객관화 시키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객관화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 모르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또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글을 쓰는 거니까.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것보다 책은 휠씬 많은 사람의 노고가 합쳐진 결정판이다. 그러니 무슨 영화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책 한 권이 나올 때마다 감사할 사람이 많다.
가장 감사하는 분은 누가 뭐래도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 게다가 응원의 글까지 남겨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그 덕에 여러 사정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연재를 제의해 주신 편집기자, 책을 만들어 주신 편집자, 일러스트 작가 모두에게 모두 감사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진 가운데 유튜브 인기가 치솟고 있다. 너도나도 유튜버가 되어 자신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들 모두가 공통으로 쓰는 문구가 있다. 유튜버는 아니지만 나도 이 말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