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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ul 30. 2019

오십 앞두고 찾은 적성, 이젠 나 생긴대로 산다.

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예민함이 준 선물.

 친구와 영화 <로마>를 보고 나오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내가 오마이 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뽑혔단다. 정확히 무슨 상인지 몰라서 얼마큼 기쁨을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내게 전화한 담당 기자님 왈, 연기대상 시상식의 대상 같은 상이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펑펑 울었는데, 금세 배시시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이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으니라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2년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글을 썼다. 연재했던 '명랑한 중년'과 아직 연재 중인 '그림의 말들', 그리고 신간 서평과 영화 리뷰, 월간잡지에 실을 에세이와 대중가요 작사까지.

밥 먹고 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글을 쓰거나 글을 쓰기 위한 무언가를 하며 보낸 것 같다. 나이 오십을 목전에 둔 지금, 무언가에 이렇게 기꺼이 즐겁게 빠져보기는 처음이다. 이제야 적성을 찾았으니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쩌면 이 길을 가기 위해 먼 길을 돌아돌아 온 것 같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돌아보면 항상 예술이라는 범주 아래서 숨을 쉬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더라도 각종 공연과 전시는 포기할 수 없었고, 늘 서점을 배회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순간에도 늘 냅킨에 뭔가를 그리고 끄적였다.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관하여. SNS에 게시물을 올리진 않지만 그곳에 올라온 좋은 글을 읽고 감정이 차오를 때면 어김없이 글을 썼다. 일기장에, 수첩에, 노트북에. 

중학교 때부터 신춘문예를 준비했던 소녀는 간호사가 됐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됐다. 그때마다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한손에 든 일기장은 놓지 않았다. 산소가 부족한 물고기가 밖으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리듯이, 나도 뭔가를 쓰면서 부족한 산소를 보충했다. 30년이 넘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런 나를 공공의 글쓰기로 이끌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은유 작가. 며칠 전 그녀의 학인들이 모여 송년회를 하던 밤, 나의 수상 소식에 내 두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해준 나의 스승이자 롤모델인 은유.

베스트셀러인 책을 여러 권 집필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그녀의 글은 너무나 틈이 없어 때때로 내게 좌절감을 심어주기도 했지만, 나를 더 깊이 사유하도록,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그녀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얼마 전 '명랑한 중년'이라는 연재를 마감했다. 1년 동안 2주에 한 편 씩 글을 써왔다. 숙제를 끝낸 것 같은 성취감과 연재에 대한 중압감이 사라지니 시원했다. 그렇게 마지막 원고를 보내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중년의 송년회'라는 주제의 원고 청탁을 받았다.

요즘, 드라마 대본 쓰기를 공부 중인 나는 많은 대본을 읽고 쓰느라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모르는 게 많으니 쓰는 즐거움보다는 써내야 하는 압박이 크다. 마음이 안드로메다 어딘가쯤 가 있는 기분이었는데 중년의 송년회에 대해 쓰다 보니 '명랑한 중년'을 쓸 때처럼 엔도르핀이 쏟아졌다. '이런 맛에 글을 쓰는구나.' 새삼스레 깨달았다. 

화가의 일생과 그림을 보여주는 '그림의 말들'은 여전히 연재 중이다.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를 보고 연계강의를 들었다. 알면 알수록 갈증이 났다.

그렇게 미술사 강의를 찾아 듣고 공부하게 된 지 벌써 7~8년이 됐다. 맛집을 친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그 감동이 너무 컸기에 보여주고 싶었고 말해주고 싶었다. 어려운 말들은 빼고 되도록 재미있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쓰려고 노력했다.

팩트 체크를 다방면으로 해야 하니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었다. 예술가의 일생이란 게 평탄치 못한 경우가 많아서 꺼이꺼이 울며 글을 쓰느라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고, 그럴 때면 혼이 빠진 좀비가 되곤 했다.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다. 대부분 칭찬이 아닌 불편하다는 소리다. 그래서 그 예민함을 숨기려고 무던히도 부대꼈다. 내게 족쇄 같았던 예민함이 이제 내게 큰 무기가 됐다. 그 예민함으로 사는 이야기를 쓰고, 서평을 쓰고, 영화 리뷰를 쓰고, '그림의 말들'을 쓴다. 글을 쓰면서 드디어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은 내가 됐다. 

2018년은 개인적으로 내 인생의 전환점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고 그것이 업이 되고 이렇게 큰 상까지 받았으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가족들, 친구들, 글 쓰는 동료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듬뿍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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