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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Apr 22. 2019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꼭 필요했던 위로.

죽음은 덮을 수 있는 게 아니고 통과해야 하는 상처.

학교에서 돌아온 중3 아들 표정이 어둡다. 같은 반 아이의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마음이 덜컹했다. 아들은 장례식장에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친구들하고 같이 가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친구의 이름을 들어보니 낯설다. 잠시 생각했다. 친한 친구도 아니고 말을 섞어본 적도 별로 없다는데 혼자서 그 아이 엄마의 장례식에 간다니.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물었더니 아들은 ‘그냥’이라고 답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집안일을 마치고 아들과 나는 장례식장을 향했다. 집에서 가까웠다.   

  

차 안에서 물었다. “그 아이는 어떤 아이야?” ‘말이 없고 항상 그림을 그리는 아이’라고 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고 항상 혼자서 그림만 그린다고. 아들은 왜 이 장례식에 가려고 생각했을까 속으로는 계속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정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짐작만 했다.    

 

빈소에 도착하니 유난히 체격이 작은 그 아이와 아이 아빠가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창백하고 눈이 퉁퉁 부은 아이 얼굴을 보니 또 한 번 마음이 덜컹거렸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우리의 등장에 놀란 거 같았다. 고인에게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했다. 고개를 드니 아이 아빠는 ‘누구신지’ 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내 아들을 슬쩍 보며 같은 반 친구라고 했다. 순간 아이 아빠의 눈빛이 반짝하는 것을 느꼈다. 아빠는 아이를 바라봤고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같은 반’이라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애써 참아왔는지 내 품에서 끕끕대며 울었다. 나도 울었다. 아들은 어정쩡하게 옆에 서 있다가 그 아이 등을 잠시 만졌다.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데 아이 아빠가 신발장까지 따라와 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에는 많은 것이 묻어있었다. 고마움, 그리고 부탁과 같은.     


집으로 오는 길, 평소에 답답하리만치 말이 없는 아들은 내게 고맙다고 했다. 같이 와줘서 고맙고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울어줘서 고맙다고. 아이 엄마의 부고 소식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단다. 그 소식을 듣고 아들은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했단다.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그래서 오고 싶었단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기면 누군가 와 줬으면 좋겠어서.   

  

시간을 흘러 한 달쯤 지났을 때 그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여전히 말없이 조용히 그림만 그린다고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같이 공도 차고 농구도 같이 하지고 말을 좀 걸어보라고 했다. 아들은 갑자기 너무 그러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어떤 말이 위로가 되는지 몰라서 그냥 있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영화 ‘레빗 홀’을 며칠 전 봤다.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베카(니콜 키드먼)와 하위(아론 에크하트)는 8개월 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그날 이후 베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초대하는 이웃도 부담스럽고, 같은 상처를 가진 부모들의 모임에 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는 외면한 채 천국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위도 이 슬픔을 극복해보려 갖은 노력을 하지만 번번이 베카와 어긋난다. 서로 조심하느라, 더 상처가 날까 봐 정작 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덮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통과해야 하는 상처다.   

   

베카의 엄마인 냇(다이앤 위스트) 역시 11년 전, 30살의 아들을 잃었다. 엄마와 딸이 모두 아들을 잃은 것이다. 냇은 베카의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격하게 출렁이는 베카의 감정을 담담히 받아낸다.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던 베카는 그 꾸러미들을 바라보며 냇에게 묻는다.    

 

“이 감정이 사라지긴 하나요?”     

“아니, 사라지지 않아. 적어도 난 11년 동안 그랬어. 그래도 변해. 슬픔의 무게가 변하는지도 모르지. 어느 순간, 견딜 만 해져. 이제 슬픔에서 기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슬픔의 벽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야, 게다가 가끔 잊기도 하고, 어쩌다가 그 슬픔을 찾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뭐랄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들 대신에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이 마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슬픔을 마음껏 드러내어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애도의 과정을 묻어두기만 한다면,  마음은 병이 들고 결국 주변과의 관계마저 무너져버린다. 친구는 물론 가족까지도. 설상가상, 이는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오기도 한다.   

  

다시 세상 속으로 손을 뻗어보기로 마음먹은 부부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초대에 앞서 어떻게 손님을 맞을 것인지 대화하는 부부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준비하고, 요리도 하고, 친구 아이들의 안부도 물어보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기.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할 수 있도록 고인의 존재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 상처를 양지바른 곳에 계속 꺼내게 하는 일. 손 잡아주고 물어봐 주고 같이 울어주기.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내게도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게도 그들의 품어줌이 필요하니까.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은 불의의 사고로 아이 둘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이들이 타고 있던 자동차가 폭우 속에 센 강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이사도라는 충격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파리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이사도라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훗날 그는 이때를 회상하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힘 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싫었다고 했다. 대신 소리 지르고 울라고 말해주는 사람, ‘아이들에 대해 묻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일어 설 힘을 얻었다고.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문득 5년 전,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아들도 그 아이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미안했다. 그때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내가, 이젠 20살이 되었을 아이에게, 아니 청년에게 이제라도 말을 건네고 싶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한테는 무슨 냄새가 났는지, 엄마가 해준 요리 중 가장 맛있는 건 무엇이었는지, 엄마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려본다. 청년과 청년의 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슬픔을 감추지 않고 먼저 떠난 엄마에 대해 마음껏 말하는 모습을. 


그러고 보니 오늘 날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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