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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Aug 01. 2020

낭만 없는 멜로드라마.

고마운 마음을 담은 중년 렙소디.

부대에서 명화 감상 수업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부대에 도착해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고 주차장에 들어갔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대대장님이다. 보통은 얼굴 뵙기 힘든 분인데 웬일이신가 했더니 조용히 다가와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셨다. 바지 주머니에서 책이 나오는 진귀한 광경! 바로 내가 쓴 신간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였다. 너무 재미있게 읽으셨다며 사인을 받으러 오신 거다. 심쿵! 감성 군인.    

 

사랑하는 내 친구 윤수진 화백의 그림.


강의실로 가는 길, 그는 책을 읽고, 세 번 울고 일곱 번 빵 터졌다고 했다. 글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뭔가 뭉클해져서 금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었단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게 썼을 작가님을 생각하면, 후다닥 읽어버리는 것은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동방예의지국 후손다운신 말씀. 이어 하루에 몇 개씩만 아껴 읽었는데도 다 읽어버렸다며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다정함^^ 나는 갑자기 민숭민숭한 주차장에서 느닷없이 들어오는 감동에 코끝이 시큰해져 괜히 고개 들어 하늘만.

  

그는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에 북마크를 해왔다. 이 세심함!!! 외고를 거쳐 육사를 나왔다더니 역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다르구나. 강의실에 도착한 우린 그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경험과 내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아 격하게 공감했단다. 내 아들에 관해 쓴 이야기, 출산에 관한 이야기, 사랑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얼굴에서 진심 감동이 느껴졌다. 2차 심쿵!     


그리고 포스트잇에 독후감을 써 오셨다. 것도, 마지막 페이지에 딱 붙여서.

     

“세상에…. 왜 이렇게 멋진 것이냐!!! ” 사람 설레게. 이 정도면 하트 어택.    

 

인증샷을 찍는데 키 차이가 너무 나니 무릎을 구부려 주셨다. 키가 188.  멋짐 투성. 책상에 앉아 사인하다가 힐끗 보니 그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헐크도 때려잡을 것처럼 커다란 손이 가지런히 모아진 걸 보니 마음속에 훈풍이 불었다. 그동안 뭐 좀 쓰느라 잔뜩 구겨지고 움츠렸던 마음이 다리미로 편 것처럼 쫙~~~ 펴졌다.      


사인한 책을 건네며 입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감동으로 오열했다. 수업 시간이 되어 병사들이 들어오자 그는 자리를 떴다.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윤수진 화백의 그림.


수업이 끝나고 드라마를 준비하는 친한 동생 작가를 만났다. 인증사진을 보여주며 막 자랑했다. 드라마 버전.   


동생         (한심한 눈으로 날 보며) 언니, 드라마 그만 찍고         제발 드라마를 쓰세요! (매의 눈으로 훑어보                              며)언니, 지금 속으로 드라마 찍고 있죠?

나              (당황하며)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부부의 세계 명대사 패러디)

동생          (큰소리로) 언니! 매장당하고 싶어요?

나              (한숨, ) 하여간 결혼이 적폐다. (회한이 밀려오는)

    



동생은 책은 좀 팔리냐고 물었다. 말이 나왔으니 이야긴데, 뭔가 배신감이 든다. 민족에 대한 원한이랄까? 연재할 때는 그렇게 출판사 여기저기서 책 내자고 난리를 치고, 독자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메일을 받았었는데, 책이 막상 나오니 안 팔린다. 광고가 안 돼서 그런가? 책이 나오면 빌딩은 못 사도 꽃등심은 맘껏 먹을 줄 알았는데 인생은 늘 예측을 비껴간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읽다 만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가끔 SNS를 찾아보면 모르는 누군가가 남긴 사진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책과 나란히 코 푼 휴지가 뭉텅이로 올라와 있었다. 또 누군가는 작가님과 단번에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인생 에세이를 만났다는 사람들. 울다가 웃느라 진이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런 걸 보면 또 부끄럽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내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아니, 내 책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가.

    

드라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난 또 신나게 부대에서 있었던 일에 살을 붙여 떠들었다. 원래 모든 스토리는 굴러갈수록 커지는 법. 그리고 마지막에 이제부터 난 나라 걱정에 잠 못 잘 거 같다고 했다. 듣고 있던 친구는 주옥과 같은 대사를 날렸다. “넌 니 걱정이나 해!” 하여간 다들 낭만이 없어요.     


전화를 끊고 라디오를 틀었는데 빅마마의 break away가 흘러나왔다. 흥얼흥얼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청껏 부르고 있다. 운전하면서 큰소리로 노래하는 여자.     


“우연히 나를 보더라도 나를 지나쳐줘, 너를 잊은 나를 위해. 혹시 너 말을 걸어와도 나는 모른 체할 테니 break away no I can wait 내가 널 보내줄 게 편하게 ~~~~”     


그는 책을 읽고 사인을 받으러 왔을 뿐인데 나의 창작 멜로드라마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 어떤 낭만도 없이…….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내년에 공연될 무대극 하나 쓰느라 마음이 버려진 쿠킹포일처럼 구겨졌다. 나를 제외한 이 공연을 만드신 모든 분들의 스펙이 장난 아닌 가운데 나만 장난인 스펙으로 그 수준에 맞는 대본을 쓰느라 얼마나 쩔쩔맸는지 모른다. 나의 허술한 대본에 날개를 달아주시고 끝까지 믿어주신  작곡가 선생님 및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좋은 작품이 나온 거 같다. 그러느라 힘들었는데, 하루 동안이나마 장마에 잠깐 나오는 햇살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저 이제 나라 걱정 안 해도 되겠지요?" ㅎㅎ

  

ps: 참, 작년에 내가 쓴 다락방 미술관이 세종 도서에 뽑혔대요. 작년에도 뭔가에 뽑혔었는데 2관왕이네요^^ 2020 세종 마크가 딱!!!!ㅎ


#명랑한중년웃긴데왜찡하지? #다락방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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