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덮개와 빵꾸
하루 중,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손끝에서 떨어지지 않아서인 걸까.
결국, 네게 '구멍'이란 게 나버렸다.
아주 조그맣던 구멍이 나의 무심함 때문에 점점 커져, 이제 펜 뚜껑만 한 크기가 되어버렸다.
문득, 다른 곳은 모두 멀쩡한데 유독 ‘D’에만 구멍이 난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Delete. 지우고 싶은 게 많아서일까.
Damage. 내 안에 뭉개진 추억과 상처를 지우듯.
Dream. 아직도 꿈꾸는 게 많아서일까.
Develop. 여전히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걸까.
Delight. 앞으론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꽃길이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은 아닌지.
Deference. 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살아서 누군가가 닮고 싶은 ‘좋은 사람’이 되고픈 걸까.
Dedicate. 내가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길,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일까.
Desire. 오래도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음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길 기대하는 건, 그저 나만의 욕심인걸까.
Destination. 인생길, 작은 이정표 하나 있다면 길을 잃지 않고, 헤매지 않고 그곳까지 닿을 수 있을 텐데. 너무 많이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Dignity.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 때문인 걸까.
구멍.
그냥 놔둬야 할지, 밴드라도 붙여줘야 할지.
이왕이면..
스마일 스티커나, 핑크빛 하트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줘야겠다.
볼 때마다, 한 번씩 웃기.
볼 때마다, ‘사랑한다’ 말하기.
그러면, 구멍이 그저 그런 아픔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