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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an 24. 2017

자작나무 숲을 걷다

강원도 인제 여행 2

하늘과 숲

잉크를 한껏 풀어놓은 듯한 푸르름의 극치.

그 하늘 아래, 하얗게 눈 덮인 강원도 인제 원대리 숲.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한가득 품고, 첫 발을 내딛다.

3km 넘게 이어지는 산길

굽이굽이 오르막길, 잰걸음.

앞으로 걷다 뒷걸음으로 걷다, 다시 앞으로.

아침 해와 함께 가는 길

산길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오르는 발걸음이 더디고 숨이 차오르는 데다, 추운 날씨 탓에 코가 싸! 하고 머리가 쨍! 했지만 걸어가던 그 길에서 만난 풍경은 말 그대로 '눈부신 겨울 풍광' 그 자체였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눈이 툭! 하고 떨어져 깜짝 놀라기도 하고, 바람결에 날리는 눈이 햇빛에 반사되는 모습이 흡사 '반짝이 펄' 같아 넋을 놓기도 하였다가, 저 멀리 눈이 날릴 땐 구름과 안개가 하얗게 몰려오는 듯한 환상적인 풍광이 눈 앞에 펼쳐져,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분다, 눈이 날린다
자작나무 숲

다리가 퍽퍽해지며 힘이 빠질 때 즈음, 눈 앞에 나타난 신세계.

하얀 속살을 드러낸 듯한 수많은 자작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숲.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불붙이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하여, '자작나무'
오묘한 느낌의 숲

결국 내가, 

드디어 내가, 그곳에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백색의 자작나무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매치되어 나를 홀리고 있었다.

자작나무 가지 위에 눈이 앉았다

아침 햇살에 비친 그들도, 하얀 눈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그들도, 청명한 하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들도, 제 각각 다른 매력으로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자작나무


함께 모여 더욱 빛난다는 건 이런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깨닫는 순간.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보고픈 느낌이 이런 거였지, 싶었던 그곳.

불현듯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 코 끝이 더 시려오던 그 자리.


자작나무 숲은 내게, 

그런 곳이었다.


Epilogue


사실, 이번 여행의 시작점은 한동안 푹 빠져 듣던, 가수 정승환(1집)의 '숲으로 걷는다'라는 노래였다.


1집 앨범 재킷 배경이었던 자작나무 숲에 눈길이 갔고, 이 곳에 가야겠단 생각을 했던 게 지난해 늦가을.


https://www.youtube.com/watch?v=wOqN2ZfZzmw

'숲으로 걷는다' (정승환 1집 <목소리>)


결과적으론, 두 달을 기특하게도 잘 버텨준 내게 '최고의 선물'이 된 이번 여행.


이 세상엔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걸, 한번 보고도 또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쳐준 소중한 여행이었다.


이번 산행이 남긴 다리 근육통이 서서히 사그라질 때 즈음, 또다시 주섬주섬 짐을 싸고 있을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또 하나의 인생여행이 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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