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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04. 2017

강화도(江華島)에서, 걷고 생각하고 기도하다 #1

갑곶 순교성지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Prologue     


감기 기운인 듯, 몸살인 듯, 알 수 없는 컨디션 난조가 이어지던 나날들.     


며칠, 뜬 눈으로 밤을 새웠기 때문일까.

극한의 스트레스로 burn out이 되어서일까.     


내 안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아우성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다시 밖으로

한 발, 내디뎠다.     

   



여행을 하는 동안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원래 가고자 했던 행선지가 아니었으나, 마침 현지인이 추천을 하고 시간대까지 맞는다면, 그곳은 필히 나와 인연이 닿는 곳.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여행 본연의 목적과 마주하게 된다.

          

갑곶 돈대 & 순교성지     


역사적으로 강화도는 거란, 몽고,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외세 침략을 막아내는 최전선 방어기지였고, 또 서양의 문물이나 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관문이기도 했다.  

   

갑곶돈대     


갑곶*돈은 고려가 강화로 천도(1232년)한 이후 1270년까지 몽골과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숙종(1679년) 때 이 곳에 돈대**를 축조하였고, 조선시대 강화도에만 5개의 진(鎭), 7개의 보(堡), 53개의 돈대(墩臺)가 섬 전체를 에워싼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 곶은 '바다를 향해 내민 땅'이라는 뜻.
** 돈대(墩臺)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초소)
강화해협 & 갑곶돈대

갑곶돈대에서는 왼쪽으로 강화대교가 매우 가깝게 보이고, 오른쪽으로 멀리 강화해협을 조망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용한 불랑기 & 소포
이섭정(利涉亭, 1976년 복원)
이섭정(利涉亭)에서 바라 본 풍경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 곳에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던 '병인양요'(고종, 1866년).   

  

갑곶 돈대 근처 ‘갑곶 순교성지’는 병인양요 이후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천주교 신자분들, 그리고 신미양요(1871년) 당시 목숨을 잃은 세 분(박상손, 우윤집, 최순복)의 순교자를 기리고자 성지로 조성되었다(2001년).     

갑곶 순교성지     


갑곶 성지에는 지하성당과 본관 성당이 구분되어 있다.     


본관 성당은 노아의 방주가 떠오르는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고, 지하성당은 배 안의 형상을 닮은 구조.   

갑곶성지 본관성당
갑곶성지 지하성당
배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
고요함 속 성체조배

평화로운 적막감과 고요함이 감도는 지하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마치며 나오는 길에 만난 기도문,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I

(‘세상의 매듭을 푸는 교황 프란체스코’ 中)   

저희 삶의 매듭들을 풀어주시는 거룩하신 어머니께 청하오니 자애로운 마음으로 저를 받아 주시어, 악마의 공격으로 인한 매듭들과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나아가 어머니께서 받으신 은총과 어머니의 중개와 모범을 통하여 저희 또한 모든 악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하느님과 일치하지 못하도록 묶어놓은 온갖 매듭들을 풀어주소서.

기도문을 읽어 내려가며,     

나를 얽어매는 모든 나쁜 매듭들에서 풀려날 수 있길,

꺾인 날개를 곧추 펴고 다시 비상할 수 있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십자가의 길     


본관 성당 위쪽으로 올라가면 '십자가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십자가의 길 초입에는, 예수님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오른편에 세 분의 순교자비가 함께 모셔져 있다.

많은 신자분들이 예수님의 발을 잡고 기도드린다고 한다.
순교자 삼위비

'십자가의 길'로 내려가는 계단.

강화대교가 멀리 보이는 가운데, 숲으로 둘러싸인 길은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 분을 신뢰하여라. 그 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 5)

계단을 내려오면, 십자가의 길 시작 지점에 닿는다.

인생 자체가 십자가의 길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


살아가는 내내 십자가의 무거움과 불편함을 토로하며 살 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있음을 잊을 정도로 삶에 몰입하며 살 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거겠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진 채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곳곳에 새겨진 성경 글귀와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고요한 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14, 13)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십니다. (코린 I 10, 13)
여러분은 한 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5, 8)     

묵언 묵상을 하며 십자가의 길을 지나, 오후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본관 성당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본당 정중앙, 한복을 입고 계신 예수님.     

본당 예수님상

내 안에 고요한 울림이 '일렁임'으로 변화하는 순간.    

 

미사 중 ‘오늘은 특별히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에 가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       


영성체와 보혈로 그 울컥함을 가라앉히려 애썼으나, 마지막 파견 성가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라는 가사에서 눈물샘이 터져버린 나.


오랜 방황 끝에 다시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받아주시는 느낌이랄까.


미사 시간 내내 그분의 사랑과 은총, 위로 속에 다독임과 토닥임이 전해져 왔다.


그래서일까.  

     

갑곶 성지 언덕길을 내려오는 길,

머리는 맑고 가슴은 충만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가 이전보다 훨씬 경쾌하고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지난 여행에서 꼭 가보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 이름 고요한)가 축성한 건물(1900년)로,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으로 명명됨.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며, 현존하는 한옥교회건물 중 최고(最古).
-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의 의미를 부여한 배 형상이며, 성당 건물은 장방형 중층구조로 전체적으로 한국 정통 양식을 따랐으나,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
성공회 강화성당 외삼문 입구
천주성전(天主聖殿, 사적 제424호)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에는 동종(銅鐘), 우측에는 보리수를 만날 수 있다.

감사성찬례의 시작을 알릴 때 사용하는 내삼문 동종. 소리의 울림이 크고 시원했다.
정면에 보이는 키 큰 보리수

보리수는 영국 트롤로프 신부님이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1900년).


이는 성공회가 각 나라와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토착화 신학'의 선교정신을 기반으로, 불교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식재한 것.


보리수 맞은편에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심었으나, 태풍 블라벤(2012년)으로 인해 쓰러졌다고 한다.


성공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 종교개혁 결과 로마 가톨릭(천주교)에서 분리·독립된 영국 국교회로서, 로마 가톨릭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나,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1) 천주교는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제사 예식을 미사(Mass)라고 하나, 성공회는 예배(Service)라고 하는 점,

(2) 성공회도 매주 성찬식을 거행하나, 신자들 없이 진행하는 신부님의 단독 미사를 허용하지 않는 '공동체 예배' 형식인 점,

(3) 주교·신부 등 성직자 제도와 수녀·수사 등 수도자가 존재한다는 점은 동일하나, 신부님의 결혼을 허용하며 여성 사제를 인정하는 점,

(4) 7 성사(세례·성체·고해·견진·병자·성품·혼인)를 지키되 고해성사는 신부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자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는 것,

(5) 연옥과 교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성모 마리아를 성인으로서만 공경하는 점은 분명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성당 뒤편

토요일 오후에 이 곳에 잠깐 들러 성당만 둘러보고 가야지 했었는데, 일요일 오전 11시 감사 성찬례를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한다기에 다음날 다시 들러 예배에 참가했다.  


개인적으로 성공회의 예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천주교 미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곳에 계신 성공회 신자분들의 신앙생활은 어떠한지 궁금했기에,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성당 내부

동종(銅鐘)을 치며 예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입당 성가를 부르며 감사 성찬례가 진행되었다.     


천주교의 미사 예식과 거의 동일했지만, 기도문이나 성가가 조금씩 달랐고, 무엇보다도 제대의 위치와 신부님의 미사/예배 집전 방식에서 차이가 컸다.

    

즉 천주교의 경우 신부님이 예수님 십자가상 앞에서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집전하시는 반면, 성공회 신부님은 신자들을 뒤에 두고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예배를 진행하셨다.


이는 공동체 예배,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형식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처음 와 본 장소, 처음 뵙는 분들, 처음 겪는 다른 형식의 예배였기에 내겐 모든 게 낯설었던 상황.


입장 바꾸어, 그분들께도 나는 낯선 뜨내기 여행자였을 텐데, 그럼에도 예배 시작 무렵 내게 먼저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시고 기도서와 성가집을 가져다주시면서, 성체성사를 받은 천주교 신자라면 영성체를 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시는 등 살뜰히 챙겨주시는 신자 회장님 덕분에 1시간 40여분 동안의 예배에 오롯이 집중하여 참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예배 말미에 신부님께서 천주교와 성공회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신 데다, 공지사항을 알릴 때에는 신자 회장님께서 친히 ‘강화도에 여행 와서 처음 이 곳에 들른 천주교 신자’로 나를 소개해주시고 환대해주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곳 신자분들께 인사하고 환영의 박수까지 받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도 많은 사랑과 은총을 받은 것 같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따스하고 촉촉한 감동이 전해져 왔다.     

성당 뒤편 사제관

서로가 다름을 인지하되, 널리 포용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대립과 반목의 씨앗을 뿌리지 않으며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는 진리를, 그분들의 미소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의 목적     


작년 구정 연휴 즈음, 사전 계획 없이 무작정 강화도 여행길에 오른 이후 1년 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미 다른 사람.   


올해가 지나갈 때 즈음의 나는, 오늘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있길,

한층 더 성장하고 무르익고 단단해져서, 그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길,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나의 행복을 굳건하게 지키고 키워나가길,    


간절히 기도하고 묵상했다.


이틀 동안 강화에서 받은 사랑과 은총이 앞으로 내게 크나큰 자양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보슬비 촉촉하게 뿌리는 아침, 성공회성당 예배를 마치고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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