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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04. 2017

강화(江華) ‘더리미’에서, 보고 듣고 머물다 #2

더리미 미술관 & 한옥 게스트하우스

강화도 '더리미'

     

’는 더하기, ‘리(理)’는 마을, ‘미(尾)’는 꼬리.     


강화도 서해안 끝, 작은 마을들이 모여 지금의 큰 마을을 이루었기에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를 그렇게 부른다.


더리미 포구     


동쪽에서 뜨는 해를 정면으로 받아 안아, 매년 해돋이를 구경하던 곳.

강화도 끝자락, 아름다운 낙조도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농어가 회유하는 곳.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 더리미
강화해협 = 염하(鹽河)

그러나, 강화교(1969년), 강화대교(1997년), 신강화대교(2001년), 강화 초지대교(2002년) 등 여러 다리가 놓이면서 염하*(鹽河)의 물골**이 바뀌어 물고기가 많이 줄어든 탓에 이제는 오가는 이들이 뜸해진, 쓸쓸한 작은 항구.

*염하(鹽河) : 강화해협의 모습이 강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물골 : 밀물과 썰물의 흐름이 세찬 곳
개펄가에 보이는 폐선들 & 멀리 보이는 강화대교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놓았을 인공 다리, 그로 인해 변화된 자연환경과 생태계.

그 결과, 인간 삶의 터전 또한 영향을 받는 상황.     


황량한 작은 포구에서 강화해협을 바라보는 내내, 우리가 행한 것들은 어떤 방식, 어떤 모습이든 결국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배만 덩그러니
갈매기 한 마리


더리미 미술관


더리미 포구에서 논길을 따라 걸어가면 바로 만나는 곳.


신정리의 옛 이름을 딴 이 미술관은 카페와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를 겸한 곳이었다.

더리미 미술관
미술관 앞 풍경

이 곳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인 사장님은 두 자매분과 함께 음악회, 전시회, 미술심리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계셨다.

카페 내 전시된 작품
전시를 준비하는 작품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공간이, 그곳에 있었다.     


마음 맞는, 사랑하는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지원하며

함께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그리하여 상생(相生)의 철학을 실천하며 사는 삶.     


미술관 카페에서 바라 본, 너른 들판을 가득 메운 초록 벼,

미술관 1층 아르 브뤼(Art Burt*) 전시실과 한옥 게하 벽면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미술작품들,

* Jean Dubuffet(1901~1985)가 만든 용어(1945년). 어린이, 장애우, 아마추어 미술가 등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지속적·자발적으로 그린 창의적인 예술작품을 의미     
예쁘게 배치된 작품들
게하 뒤편 벽면을 장식한 그림 & 작품

그리고 게하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전통 소품들.  

아담하고 정돈된 분위기
바베큐장으로 나가는 길

발길 닿는 곳마다 소박하고 정갈한 아름다움이 내 눈길을 사로잡고, 또 내 마음을 무척이나 설레게 했다.    


한옥 게하에서의 여름밤     


햇살이 잦아들고 어스름이 내려앉은 후 한옥 게하 풍경은 ‘평. 온. 함’ 그 자체.

     

굳이 음악을 듣지 않아도 풀벌레 소리, 새소리로 자연의 교향곡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편안하고 평온한..
저녁 풍경

문득, 어린 시절부터 두고두고 좋아하는 노래, ‘별이 진다네(여행스케치)’가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aDBp74csD6g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무사히 넘기게 도와준 나의 노래.     


마음이 복잡다단한 요즘도 이 음악을 들으면, 어느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르는 듯, 평온함이 내게 닿는 느낌을 받곤 한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게스트 하우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평화롭게 적막한' 분위기.    

 

풀벌레도 잠들었는지 잠잠한데다, 그 어떤 도시 소음도 들리지 않아 음악 볼륨을 최소치로 내려도 울림이 컸던 곳.    

 

낯설지만,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기에 적합했던 머뭄터.     

구름 사이 달님

이른 아침     


반가운 새소리가 다시 들려 올 때,     

한옥 게하 앞마당 자갈 위에, 나뭇잎에, 지붕에 비가 닿는 소리.

토독!토도독!토도도도독!

내 방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

그제서야, 멀리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일상의 평화로움을 구성하는 듯.     


건너편 방, 잠에서 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 즈음, 하루 동안 정들었던 그곳을 떠나오다.    

      

더리미 주변 산책     


더리미에서 가까우면서도 가볼만한 곳을 꼽아보자면 용흥궁, 고려궁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갑곶 돈대/강화전쟁박물관 & 갑곶 순교성지, 선원사 & 선원사지 등이 있다.


앞서 소개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갑곶 돈대 & 갑곶 순교성지 외에 두 곳만 덧붙일까 한다.


용흥궁(龍興宮)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이 어린 시절 강화도 유배 시 살았던 초가집을 강화유수 정기세가 보수하여, 그 이름을 궁이라고 했다(1853).     

용흥궁 입구

이 궁의 건물은 내·외전, 별전, 행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사대부 사가(私家) 형식으로 지었다.     

유배시절, '강화도령'이라 불리며 강화도 처녀 '봉이'와 풋풋한 사랑을 나누었던 어린 '원범(철종의 아명)'.     

이후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하에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으로 명목상 왕이었던 철종.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까.     


용흥궁에서 짧지만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이 그에게 전부였으리라 생각되어, 이 곳을 거닐면서 괜히 마음이 찡해왔다.                    

용흥궁을 나오며, 왠지 모를 애잔함이 가득.

고려궁지(高麗宮址)     


고려궁지는 고려 고종(1232년) 당시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왕도를 강화로 천도한 후 개성으로 환도(1270년)할 때까지 39년 동안 왕궁터였다.

궁지에서 내려다 본 외규장각

이후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 외규장각 등 여러 관청 건물이 세워졌으나, 병자호란(광해군 1622년), 병인양요(고종 1866년) 등으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고려궁지에는 유수부 동헌 이방청, 강화 동종 그리고 외규장각만 복원되어 남아있다.

강화유수부 동헌
외규장각

특히 외규장각 내부에는 외세침략으로 어떤 문화유산을 약탈당했고 아직 반환받지 못한 문화재는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고려궁지를 나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외규장각 내부
궁지 위, 민들레 홀씨. 어디로 날아갈까.
 Epilogue     


강화도에서 돌아오는 길, 유명한 '더리미 장어'를 포장하여 김포에 사는 절친의 집에 들렀다.

     

발가락이 부러져 운신을 못하는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장어를 쌈에 싸서 나눠 먹으며 그동안 쌓인 이야기 더미를 풀어헤친 우리.     

통실통실하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더리미 장어'

따뜻한 시선으로, 공감 어린 말로, 미소 띤 얼굴로, 항상 나를 바라봐 주는 친구.     


덕분에 아직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행복을 누릴 자격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던 순간.     


서쪽 바다 낯선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그리운 친구와의 조우로 행복지수 다시 UP.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고마운 선물.               

선운사 연꽃축제장. 7월 하순, 아름다운 연꽃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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