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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Aug 05. 2017

시간이 멈춘 곳, 강원 고성 왕곡마을

영화 ‘동주’ 촬영지

Prologue     

어디로 갈까.

어디에 머무를까.   

  

평소와 달리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정하질 못해, 여행 장소를 물색하는 데만 시간이라는 품이 많이 들었던 이번 여행.     


그러다 결국, 강원도 양양에 숙소를 정하되 고성을 거쳐 양양 낙산사, 휴휴암, 하조대까지 동해안을 훑어 보기로 결정.     


결과적으론,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

    

고성에서는 홀로 걷고 또 걷는 동안, 내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지고

양양에서는 유쾌한 인연들을 만나 건강하고 좋은 에너지를 듬뿍 받아 올 수 있었으니.


고성 왕곡마을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밀집·보존되어 있다. (전통건조물 보존지구(1988년) 및 국가 중요 민속자료 제235호(2000년)로 지정)

- 마을은 동쪽의 골무산, 남쪽 호근산과 제공산, 서쪽 진방산, 북쪽의 오음산 등 5개 산봉우리와 송지호(松池湖)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골짜기 형태의 분지를 이룬다. 이러한 지형 덕분에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집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곳은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두산백과)
웃고 있는 장군님들~^^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    


구름 낀 하늘 아래 살랑살랑 부는 바람,

간간히 뿌리는 보슬비,

혼자 천천히 걷기를 두 시간여.     

구름이 살포시 내려앉은 산자락 아래 옛마을

한옥집과 초가집,

초가지붕에서 피어난 버섯,

초가지붕 위 고양이,

노랗게 피어난 해바라기

돌담과 연못,

하얗고 마알간 연꽃,

빗물이 찰랑찰랑 고인 연잎,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조약돌,     

초가집 & 해바라기
나즈막한 돌담
지붕 위 뾰족뾰족 솟은 버섯
지붕 위 고양이 한 마리
소담스런 연꽃
비 온 뒤 연잎들
시인 윤동주


시간이 멈춘 듯, 과거로 돌아온 듯한 그곳,

낯설지만 편안한 느낌 속에서 마주하게 된 ‘윤동주 시인.’     


영화 ‘동주’에서 어린 시절 윤동주가 살던 '연변 용정' 촬영지가 이 곳이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집, 정미소, 그네 등등.     

영화 '동주'
그 시절 청춘들의 아지트, 정미소
추억만 남은 그네
사진으로 남은 영화, '동주'

실제 그의 삶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이긴 하나, 그의 인생을 다룬 영화 ‘동주’의 촬영지였기에,

뇌 속 버튼 하나를 지그시 누르고 과거 시간으로 돌아가 그를, 그의 시를 반추하고 싶었다.                                      

*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에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중학교 때였던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은 후, 집에 있는 책장을 뒤지다 말고 서점으로 달려가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샀던 게.

*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춘기 소녀의 눈에 비친 윤동주 시인은 드물게 고운 선을 가진 스물다섯 오빠였고 깊고 여린 감성을 가진 남자였기에, 살아있다면 그의 목소리로 읽는 ‘서시’를 들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었다.     


영화 ‘동주’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강하늘 배우가 윤동주 시인을 연기해서 너무나도 좋았고 그가 읽는 아름다운 시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시대와 운이 맞지 않아, 미처 꽃 피우지 못한 청춘들의 삶은 몹시도 안타까웠고


그래서 그의 시를,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었을 그의 작품들을, 오래 두고 만날 기회를 상실했다는 사실은 묵은 분노를 다시금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애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그럼에도 그의 시처럼,

내 앞에 놓인 고개를 넘고 내를 건너서 숲으로 마을로 묵묵히 가다 보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감성코드가 맞는 사람들,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증거’가 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길, 어느 지점에서 만나  긍정적 연대를 이루고 함께 공통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면,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깊게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 낼 에너지의 밑천이 쌓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포함해서.


고성 왕곡마을을 나오는 길,

허허로운 내 안을 가득 채우는 건

'구름과 바람과 비와 시'였다.


하늘 위로 새 한마리
고성 왕곡마을을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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