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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Aug 06. 2017

강원 양양, 기억을 덧입히다

또 다른 색깔, 더 좋은 기억

양양으로 가는 길


살다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을 수 있다.


나의 경우, 그 기억을 없애는 방법은

더 좋은 기억으로 덮거나, 그 기억에 다른 색깔을 입히는 것.


낙산사에서 시작된 양양 여행은 좋은 인연들을 만나 이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할 수 있었기에, 탈피하듯 오래 묵은 기억을 털어내고 보송보송하고 향긋한 기억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양양 낙산사(洛山寺)


신라시대 의상(義湘) 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바닷가 동굴 관음굴로 들어가 기도하던 중, 붉은 연꽃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을 만난 이후 창건하였다는 낙산사(洛山寺, 671년, 문무왕). 


창건 후 수백 년을 이어오는 동안, 몽골 침입·임진왜란·병자호란·한국전쟁 등 여러 차례의 전쟁과 화재로 인해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고, 그중에서도 지난 2005년에 강원도 삼척·강릉·고성을 휩쓴 최악의 산불로 낙산사 원통보전과 여러 채의 전각, 그리고 동종까지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낙산사 초입, 홍예문(조선 세조)

낙산사를 마지막으로 들렀던 때가 산불로 인한 피해를 복원한 2007년 즈음이었으니, 10년 만에 다시 이곳에.


'해수관음상' 외에는 기억에 남은 풍경이 없어서인지 낙산사 초입에 들어섰을 때 첫 방문인 것 마냥,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새롭고 신기하고 또 아름다웠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 아래 바닷바람이 적당히 불어서인지, 낙산사를 둘러보는 동안 그리 덥지 않아 다행이었고,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시간을 갖고 이곳저곳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원통보전(圓通寶殿)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으로서 사찰의 중심 법당인 원통보전.

 
원통보전 앞 7층 석탑은 조선 초(세조) 불교가 쇠퇴하던 때에 건립하였다 한다.

원통보전 & 7층 석탑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인 해수관음상은 남해 '보리암 관음상'과 함께 바다의 거센 파도를 다스리는 관음보살의 상징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신도는 아니지만, 이 곳에서 절을 하고 기도하는 분들을 보며 나 또한 마음속 소원을 조용히 빌어보았다.  

왼손에  감로수병(甘露水甁)을 들고, 오른손으로 수인(手印)을 짓다

보타락(寶陀落)


보타전 앞 계단을 내려오면 누각 한 채가 있는데, 그 아래로 바람이 솔솔 불어 어찌나 시원하던지.


잠시 의자에 앉아 퍽퍽해진 다리를 주무르고 땀도 식히면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누각 아래 잠시 휴식을 청하다

7월은 바야흐로 연꽃의 계절.

지나는 연못마다 소담스레 피어난 수련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고성에서도 그러했듯 낙산사에서도 그곳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다.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니, 꽃망울 맺힌 수련과 초록 연잎이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이끄는 기운이 있는 듯했다.

Beauty & Peace

의상대(義湘臺)     


의상 스님의 좌선 수행처로, 해안절벽 위에 세워진 의상대.


8각 정자가 조금 기울어진 상태라서, 현재 정자 안 출입은 금지된 상태였다.      


산불 이전만 해도 의상대 주변에 소나무가 많았고 그 가지도 풍성했다고 한다. 지금은 몇 그루 남아있지 않아 조금 허전한 감이 없지 않지만, 노송(老松) 특유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의상대 & 절벽에 자라난 소나무

홍련암(紅蓮庵)    


이름도 어여쁜 '홍련암'에 얽힌 이야기.                  

의상이 입산을 하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색깔이 파란 이상한 새를 보고 이를 쫓아갔는데, 파랑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의상은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 석굴 앞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 정좌하여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7일 7야를 보내자 깊은 바닷속에서 붉은 빛깔의 연꽃이 솟아오르고 그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의상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기원하니 만사가 뜻대로 성취되어 무상 대도를 얻었으므로 이곳에 홍련암이라는 암자를 지었다(672년,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

절벽 끝 작은 암자에서 바라 본 광활한 푸른 바다.


바람을 따라온 파도는 계속 절벽에 부딪히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철썩이고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돌고도는 인연과 환생의 고리처럼.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

낙산사를 나오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곳에서 하루 정도 '템플 스테이'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소리, 바람에 이는 풀잎 소리, 처마에 비 닿는 소리, 그리고 풍경 소리에 집중하며, 생채기만 남긴 지난 기억은 모두 다 털어버리고 '새롭고 건강한 나'로 거듭날 수 있게 진심을 다해 기도하는 시간이 내 몸과 마음에 필요할 것 같았다.

휴휴암(休休庵)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바닷가에 여유롭게 누워 계신다 하여, 혹은 온갖 번민을 떨쳐내고 쉬고 또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진 ‘휴휴암(休休庵.)’(1997년 설립).   


부처가 바다에 누워있는 듯한, 자연적으로 생성된 너른 바위가 있으며, 내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거북 모양의 바위가 이 부처를 향해 절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너럭바위 연화대
사람얼굴을 닮은 바위

방생터 & 황어 떼    


너럭바위 입구에 황어를 방생하는 곳이 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수의 황어가 떼로 몰려있어서 놀랍고도 신기했다.


방생한 황어는 갈매기가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다 '하트' & 황어떼

묘적전(妙寂殿)    


이 곳에 모신 천수천안 보살은 천 개의 눈과 귀로 중생의 괴로움을 모두 듣고,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자애롭게 구원한다는 관세음보살님.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빌 때, 누군가가 그 기도를 듣고자 귀 기울여준다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기도의 1/3은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 또한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진심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열린 눈과 귀,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소중한 인연이길 바라본다.

묘적전
포대화상과 아기동자
치면 복이 온다는 '관음범종'

지혜 관음보살상         


수험생을 위한 기도처로 많이 알려진 이 곳에서, 한 손에 골드바를 들고 계신 '지혜 관음보살상'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여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소원을 비는 곳이구나 싶어서,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반짝반짝 골드바

낙산사, 휴휴암 외에도 두 개의 바다, 두 개의 해변이 독특한 하조대, 죽도암, 죽도정, 남대천 연어 생태공원 등 둘러볼 곳이 많은 양양.         


다시 그곳에 가면, 맛있다고 소문난 곰치국과 대구탕도 꼭 먹어봐야겠다.


누룽지 게스트 하우스  


양양 수산항 인근, 최대 수용인원이 10명 정도인 자그마한 한옥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

     

누룽지 한옥 게스트 하우스

낡은 한옥집을 지금의 게하로 만드는데 매일 16시간씩 총 4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것도 사장님 혼자 힘으로.     

아담하고 깔끔한 게하
게하 입구, "보구 드갓!"

깨끗하고 정돈된, 아늑한 공간.


Backpacker들을 위한 쉼터로서의 게하 본연의 기능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장님의 철학이 곳곳에 베여있었고, 이 곳에 머물렀던 이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그들이 느꼈을 사랑과 행복,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다.

고마움과 그리움이 담긴 엽서, 편지들

사장님 지인들의 생일 축하파티를 겸한 풍성한 저녁식사와 함께 늦은 밤까지 이어진 유쾌·상쾌·통쾌한 대화와 웃음. 그리고, 아침 조식으로 끓여먹은 구수한 누룽지와 얼큰한 속풀이 어묵 라면.


헤어지기 아쉬워 속초까지 함께 가서 맛본, 유명하다는 그 물회, 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닭강정과 수박을 안주 삼아 술자리 한 바퀴 더.


그렇게 주말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알뜰하게 쓴 후, 아쉬운 마음 한가득 안고 귀경길에 올랐다.

깊은 밤, 게하


양양에서 만난 인연들.

그들과 함께 있던 내 모습이 참 좋았고,

내가 내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     


마법같고 요술같기도 했던

그 시간, 그 공간, 나의 1일 머뭄터.


그곳에, 그리 쉽게 잊힐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고 돌아오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From 류시화 작가
게하 인근 수산항, 이른 아침 산책길 풍경
안녕!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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