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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Feb 20. 2024

봄비 내린 날 참새

- 붕새와 메추라기, 그리고 참새

 봄을 인문학적으로 인식하게 된 출발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작부터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마지막 연에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를 접했던 10대의 나는 계절의 봄이 아니라 노한 외침, 분노한 절규가 들리는 봄 들판을 연상했다. 시의 자아가 그려낸 봄은 얼마나 통한의 봄이었던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산하, 뛰놀던 들을 탈취당한 현실, 그럼에도 찾아오는 봄날을 향한 처연한 감성. 


또 다른 봄이 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1933년에 홍난파(1898~1941)가 가곡작품집인 『조선가요작곡집』을 통해 발표한 가곡이다. 


봄은 인간의 현실에 잔인하도록 무심한 자연이다. 하지만 ‘봄’이라는 단어는 각자의 사유에 따라 다양한 단어와 표현, 이미지로 다가온다.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     


생긴 모양새도 모르면서 종다리처럼 불렀던 노래다.


봄비가 촉촉한 오늘, 청계산으로 향하는 둘레길을 한참 산책했다. 내려다보니 빛바래고 퇴색한 갈색 풀 사이로 초록이 올라온다. 비도 내리고 기온이 다시 조금 내려간 탓인지 산책길은 참으로 한적했지만 세상의 소요는 오늘도 거셌다. 전설의 새인 거대한 붕새가 날아오르기 위해 일으킨다는 폭풍 같은 소요가 이와 같을까.      


붕새는 9만 리를 솟아올라 훨훨 날아간다. 이를 본 메추리가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로 팔짝팔짝 날며 하는 말했다 한다. 


“저 붕새는 뭘 하러 9만 리씩 남쪽으로 가는고.”      


고려 문인 이규보는 벼슬을 내려놓고 은거하며 《장자》의 이 구절을 인용해 시를 지었다.      


궁함과 통함, 영예와 모욕은 모두 하늘이 명하는 것 

메추리 암만 작다 해도 어찌 대붕을 부러워하리      


하늘이 명한다는 말을 운명론으로 이해하기보다,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온갖 날갯짓이 이어지는 세상에서 푸드덕, 풀숲에서 작은 참새가 날아오른다. 나도 내 자리인 이 나지막한 나무 가지 사이를 오가며 내 삶을 노래한다.


지지배배 짹짹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1901~1943.4.25)가 1926년 잡지『개벽』 6월호에 발표한 시. 일제는 이 시의 발표를 빌미로 주요한 잡지이던 『개벽』지를 폐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 시에 작가의 치열한 저항 의식이 담겨있다고 평. 

- 봄처녀 : 현대시조 시인 이은상(1903~1982)의 시조를 가사로 작곡가 홍난파(1898~1941)가 작곡한 곡. 1933년에 작곡자의 가곡작품집인 『조선가요작곡집』에 발표.     

- “저 붕새는 뭘 하러 9만 리씩 남쪽으로 가는고.”

 《장자》 제1편 소요유 제1장(莊子 第1篇 逍遙遊 第1章)-제해와 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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