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대학교 시절에 특히 인문학 전공인 우리들은 모두 펜과 종이를 들고 다녔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했어도, 다른 전공은 컴퓨터나 타자기 등을 활용했지만 제 전공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한자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학원 수업에 저마다 손글씨로 작성한 보고서나 발표 요지문을 돌려 보았습니다. 서로의 문건을 받아 들면 그 내용은 차치하고 글씨체를 놓고 의례 놀리곤 했습니다.
“이거 이거, 덜컹덜컹 지하철 타고 오면서 부랴부랴 쓴 게 분명하구먼.”
“글씨에 완전 취기가 올랐네. 어제 당최 얼마나 마신 거야?”
“글씨가 오선지 위 악보냐 악보야? 아주 춤을 춘다!”
악의는 없던, 동학끼리 서로서로를 놀려먹던 자조적 농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문건이 교수님 손에 들어가면 글씨체는 칼날 같은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교탁 위에 올려진 발표요지문을 휘리릭 들춰보며 예의 글씨체에 대한 품평을 먼저 했습니다. 자칫 흘려 쓰기라도 했다간,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지도 못하고 거의 십여 분 이상 훈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름 정성껏 썼어도 서체가 교수님 눈에 들지 않으면 그 역시 일장 교시를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서체는 또 다른 인격이라는 게 요지였습니다.
대략 이십 년 전 미국 UCLA에 적을 둔 일이 있었습니다. 동료들과의 모임에 초등학교 자녀들이 동행한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만, 그 당시 친구 아이들이 다니던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필기체 훈련을 집요하게 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도 제가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에 선생님의 노트 검사는 글씨체 검사이기도 했습니다. 흘려 쓰지 마라, 줄 가운데에 적당히 들어가게 해라, 글씨가 왜 이리 작냐 크냐 등.
하지만 PC가 보편화되면서 박사과정을 다닐 때는 모두의 발표문과 논문이 컴퓨터로 작성 배부되었습니다. 더 이상 술 취한 글씨도, 지하철을 타고 달려오던 저마다의 글씨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컴퓨터로 작성했으므로 한 획도 어그러지지 않은 글씨체만큼이나 얼핏 보기에 그 내용도 모두 좋아 보였습니다.
그 추억을 곱씹다 보니, 문득 브런치 글이 작가의 자필 원고로 올라온다면 그 글을 접하는 느낌이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를 상상해 봅니다. 작가들의 글씨체를 접함은 참으로 새로운 묘미가 있는 글 읽기가 될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