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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Sep 05. 2020

세상의 변화와 부모만 못한 자식

-거울 속 내 어머니

네 나이에 나는 벌써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네 나이 때 나는 이러저러했는데 왜 너는 아직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할머니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주로 방에 책가방이나 옷가지 등을 던져놓고 방치해 둔 것을 비롯해 나의 ‘신변 정리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실 때 그러셨다.

 

할머니는 평생 조선시대 여인이셨다. 은비녀로 쪽을 지어 올린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으셨고, 늘 한복 차림 이셨다. 매사 외딸에 막내라고 어리광이나 부리는 나를 보시며, 남의 집으로 시집보낼 딸자식에게 요리 등 여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한소리를 하시곤 했다.

엄마의 나에 대한 교육관은 할머니와 완전히 극에서 극을 달리게 정반대였다. 할머니와 엄마의 극과 극의 가르침에서, 나는 별다른 충돌 없이 엄마 교육의 수혜를 온전히 받고 자랐다.


나의 경우에는 할머니였지만, 대개 부모 자식 사이에도 비슷한 경우가 일어난다. 부모 삶의 시간이 기준이 되어 자녀에게 한 소리 하는 일이다.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시대가 달라졌기에 빚어질 수밖에 없는 갈등이다. 사용하는 달력은 같지만, 자식은 부모 세대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부모 세대가 통과해 온 삶과는 전혀 다르게 짜인 프로그램에 기초한 삶의 방식이다.

 

자녀들이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원칙적으로 군역을 지는 나이는 16세부터 60세였다. 말하자면 국가가 16세 이상은 성인으로 간주하였으며, 60세를 지나면 국가에 대한 의무에서 벗어난 노인이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인 이팔청춘은 성인으로 인정받는 16세를 말함이다. 결혼은 경국대전에 남자 15, 여자 14세가 되면 허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성인의 나이는 만 19세이니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나이 자체는 3살이 더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는 나이는 이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보다 나은 세상, 보다 행복한 삶을 지향함은 인류가 생겨난 이래 늘 있어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제 보다는 나은 오늘이라고, 내일은 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으며 잠을 청해왔다. 부모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 사정은 각자 다 다르겠지만, 살아온 시대에 강요된 가치, 그것에 동의를 하건 안하건 상관없이 그 틀 안에서 살아야 했던 삶에 대한 보람과 피로가 뒤섞여 담겨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역시 무심코 또 그런 말이 나오곤 한다.

엄마는 네 나이에 이미......... 아버지는 네 나이에 벌써.........


세상에 끔찍한 일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부모님들은 헤쳐 나왔다. 우리의 조부모, 부모님도 그러하였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존재이다. 시대의 상황과 삶의 시간표는 너무도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말이다. ‘부모’ ‘자식

 

그런 말을 나는 하지는 않는다. 자식에게 너 나이 때 나는........”이라는 말..

하지만 거울을 보면 이젠 늘 엄마가 보인다.

내게서 점점 더 엄마가 보인다. 그리고 할머니도 보인다.

  

 

<딸이, 아들이...이제야>


저를 보고 있는데

문득 문득 엄마가 보여요.

이제는 거울 앞에

매일 엄마와 마주해요.

엄마, 사랑해요.

                                                         

터벅 터벅 걷다가

자꾸 자꾸

아버지가 보입니다.

내 나이에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버지, 고맙습니다.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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