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강공주’로 살아가기

- 영혼의 눈물을 마르지 않게

by SeonChoi

평생 따라붙는 별명이 있는지?


나와 평강공주의 인연은 나이조차 가물가물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초점은 ‘공주’가 아니라 울보인 ‘평강’이다.


잘 알려졌듯이 평강공주는 《삼국사기》 45 열전 5 온달전의 여주인공이다.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 평강왕, 평국왕이라고도 한다)의 딸 평강공주가 울기를 잘해서 결국 얼굴도 못생기고 다 떨어진 행색에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하는 바보 온달(?-590)한테 시집갔다는 이야기다.


평원왕은,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는구나! 장차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을 터이다.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 하겠다.”라고 하였다. 어쩌다가 아니라 매양 그렇게 말하였다.


울보이던 평강공주가 궁궐을 나와 온달에게 찾아간 뒤 보여준 행보는 얼마나 당차고 지혜로운가!

온달은 따를 사람이 없는 훌륭한 사냥꾼으로 거듭났다. 그 명성으로 왕의 눈에 들어 후주 무제가 침공해 왔을 때 선봉장이 되어 제 일의 공을 세웠다. 전장에서 화살을 맞아 사망한 온달의 상여가 차마 떠나지 못할 때, 그 이별의 장면과 평강공주의 송별사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한가!


이러한 온달전의 내용 자체는 설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그 설화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의의는 당시 한반도와 중국의 정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내 위의 짓궂은 오빠들은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빼버리고 나를 울보여서 온달 같은 바보에게 시집갈 평강공주라고 놀리었다. 평강공주의 당찬 행보는 알지도 못한 채, 눈물이 많은 것은 흠이라는 생각으로 위축되곤 했다.


사실 유학자의 글에도 눈물은 참 많이 보인다. 제 아무리 엄격한 유학자라 하여도 후회, 슬픔, 이별, 아쉬움 등으로 눈물이 쏟아짐을 시와 글로 토로하였다. 피눈물을 쏟다가 실명하기까지 했다는 표현도 제법 나온다. 눈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 자체이다.


더 이상 눈물로 놀림을 받을 나이는 아니지만, 여전히 눈물이 많다. 그럴 상황과 장소가 아닌데도 나의 내면은 저절로 반응을 일으켜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다. 때로 다정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다가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본 일도 있다. 외출하려면 핸드폰보다도 먼저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이 손수건이다.


이제는 그저 이 삶이 다할 때까지 눈물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따라붙은 별명인 ‘평강이’로 내내 살아가려 한다. 눈물은 내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00909_102043375.jpg

<눈물이 눈물에게>


어렵게 연 말문 앞에

그녀의 눈이 빨개지더니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어요.


시려오는 제 콧등을

간신히 진정했어요.

혼자 흘렸을 그녀의 눈물이

제 눈물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죠.


다른 눈물이 걸어오는 말을

듣기 위해

저도

다른 이도

홀로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있는거죠.


다른 눈물이 건네는 말을

듣지 못하는 눈물은

혼자서 사라지는

짠 액체일 뿐이죠.


후기 :

처음만나 서로 소개하는 시간에, 그녀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어요.

어린 나이에 당차게 걸어왔지만, 그 길에 혼자 흘렸을 그녀의 눈물이

제 눈물을 불러냈어요.

선우씨...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래요.


글/그림 Seon Choi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의 변화와 부모만 못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