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Sep 14. 2020

흥부의 꿈

-놀부가 쫒아내 받은 복

흥부가 복을 받은 까닭은 무엇인가?

(놀부가 쫓아냈기 때문이다.)

 

주관식 국어시험문제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내 아들의 답이었다. 당연히 빨간 색연필이 사선으로 쭉 그어진 오답이었다. 하지만 아들 말의 요지는 이러했다.

 

'흥부는 원래 착한 사람이다. 어디에서든 다친 제비를 보면 당연히 치료해 주었다.

형 놀부 집에 흥부가 살고 있었으면, 제비가 은혜 갚은 그 복은 놀부가 차지했다.

흥부가 자기 집 마당에 씨앗을 심고, 나중에 복을 받을 수 있던 것은 놀부가 쫒아 내었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설명하였다. 시험문제의 답은 아니었지만,  오호, 그렇구나!”하고 인정해주었다.  물론 그 뒤에도 학교 시험문제의 오답과 아이 나름의 정답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흥부전은 흥보전, 박타령 등 여러 이름으로 전하는 소설로 수 십여 가지가 있다. 판소리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다양하게 전해지는 판본만큼이나 흥부전은 여러 가지 의미와 온갖 해석이 가능한 판소리계 소설이다.


 흥부처럼 박을 슬근슬근 톱질하는 행운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  어릴 때 동화처럼 접한 내용이 각인된 탓인지, 흥부전을 놓고 여러 질문을 하면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천편일률적으로 금은보화가 나왔다는 답변이다.

 

흥부전이 널리 보급되고, 많은 사람이 즐긴 까닭은 사람들의 심경을 대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즐기고 공감한 이야기가 물질적인 축복만일까? 흔히 말하는 권선징악이나 동물이 은혜를 갚은 이야기 등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고 이야기의 절정인 흥부의 박에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첫 번째 박에서는 말하자면 온갖 명약이 나왔다. 흥부는 밥 보다 못하다며 실망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는 물품이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술, 소경 눈을 뜨게 하는 술, 벙어리도 말하게 하는 약 등이다.

 

두 번째 박에서는 각종 세간과 "책"이 나왔다. 자개 장, 동래 반상, 안성 유기 등이다. 그런데 매우 주목되는 내용은 동몽선습》,통감》,사략》,논어, 맹자 등의 책이 쏟아져 나온 일이다.


세 번째 박에서는 흔히 동화책 등에서 그림으로 접한 그 장면이다. 수 천석에 이르는 온갖 곡식, , 비단, 온갖 의복류 등이 산더미 같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집을 지어주는 목수가 나왔다.


흥부는 날품을 팔아 연명하는 가장 가난한 농부의 상징이었다. 돈을 받고 송사에 휘말린 사람의 매를 대신 맞아준다고 할 정도로 절망스러운 나날이었다. 그가 은혜로 받은 대박은 그 의미가 매우 깊고 상징적이다.

 

그가 가장 먼저 받은 대박은 인간의 능력으로 한계가 있는 질병과 죽음의 해결이었다.

두 번째 대박이야말로 금상첨화라 말하고 싶다. 두 번째 박에서는 경서에 들어가기 전에 배우는 동몽선습, 그 뒤의 과정인 통감사략, 그리고 본격적인 유교 경전인 논어, 맹자가 나왔다.

책 자체도 얼마나 귀했을까 마는, 이는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dream)을 선물로 받음이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든 가난한 자의 대명사와도 같은 흥부가 과거급제를 통한 입신양명의 꿈을 가지게 됨이다.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행운에 물질적인 축복을 가볍게 여김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 그것이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다. 두 번째 박은 가난한 날품팔이로 설움과 좌절에 빠졌던 흥부가 이제 이루고 싶은 꿈을 갖게 됨을 상징한다.

 

관심을 갖는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음은 행복한 삶이다. 흥부는 그 행복한 삶을 누리는 대박을 갖게 되었다. 흥부가 두 번째 박을 통해 상징적으로 갖게 된 행복, 그 행복이 갖는 의미를 잘 짚어보고 싶다. 

 

미래학자들이 여러 가지 예견을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이제 인간이 추구할 것은 경쟁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한다. 인간답게 창의적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 방면에는 문외한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라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그대의 꿈은 무엇인지?  5년 뒤에, 장차 미래의 어느 날에, 지금 몇 살이든 앞으로 남은 살아있는 시간에 소중하게 들쳐보며 한발 한발 걸어가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흥부전은 나에게 그것을 잡는 대박’의 의미를 말해준다.

 

 

※ 단원 김홍도의  <자리짜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어린 아들의 글 읽는 소리에 맞추어 아버지는 자리를 짜고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아내고 있는 광경이다. 아들은 낮에 서당에서 배운 천자문을 부모님 앞에서 자랑스레 막대기로 짚어가며 읽어 보이고 있다. <자리짜기>에서는 서민 가정의 유일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 신병주, 노대환, 흥부전,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개, 2005.

작가의 이전글 ‘평강공주’로 살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