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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권하는 바벨탑을 넘어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by SeonChoi

이상형을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일은 없지만, 굳이 고른다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현진건(1900-1943)이 1921년에 발표한 "술 권하는 사회"라는 매우 우수한 단편소설이 있다.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소설에는 일본 동경에 유학을 간 남편을 몇 년을 그리워하며 지낸 아내가 등장한다. 드디어 남편을 만났지만 아내는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토록 기다렸던 남편은 한숨만 쉬고, 몸도 쇠약해질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들어오기 일쑤였다.


답답한 마음에 아내는 ‘누가 이렇게 술을 권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이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탄식하였다. 아내는 남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내를 향해 “아아, 답답해!”를 연발하며 남편은 또다시 밖으로 나갔다. 절망한 아내는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향해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하며 절규하였다는 내용이다.


소통되지 않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부부는 전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 소설은 요즘도 상대방과 말뜻이 통하지 않을 때 끌어와 빗댈 정도로 예리한 분석을 담고 있다.


아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은 술 권하는 현실인 '사회'가 아니었다. 술 마셔야만 견딜 수 있는 '남편의 마음'이었다. 뛰쳐나간 남편은 그동안 아내가 집 안에서 살아온 경험, 새댁으로 품고 있는 소망을 헤아리지도 못했고, 대화로 풀지도 않았다.


세간에도 동문서답하는 어이없는 대화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웃음도 유발하는 우스개 얘기들이 있다. 한때 유행한 만득이 시리즈 가운데 만득이가 정밀한 청력 검사를 받은 이야기가 있다. 검사 결과 만득이의 청력은 평균 이상이었다. 의사는 청력이 우수한데 왜 검사를 받았냐고 물었다. 만득이는 부인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청력 검사를 받아보라고 보냈다고 하였다.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도 이러할진대 남과는 오죽하랴 싶다.


같은 문화권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서 소통이 막힌다면 끔찍하게 답답한 세상일 것이다. 가끔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 거 맞지요?”라고 묻고 싶은 경우가 있다. 대화는 나누었는데 뜻이 통하지 않았을 때처럼 답답할 때가 있을까. 원인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은 소설 속 남편의 ‘사회’처럼 늘 ‘술’을 권한다. “아, 답답해”하고 뛰어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잘 알려진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종교적 의미는 뒤로하고, 사건에서 찾는 의미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말이 서로 달라져 소통하지 못하게 된 일이다. 사실 사용하는 언어가 서로 달라 못 알아듣는 상황이야 해결할 길이 얼마든지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소통의 단절’이야말로 방법을 찾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소통에서 오는 기쁨은 사뭇 크다. 숨이 아주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대화, 소통되는 그 기쁨은 단절의 바벨탑을 극복하는 쾌거이다. 상대방의 경험, 소망, 마음을 헤아리며 나누는 소통, 그 소통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의 쾌거, 그것을 누리는 일상에서의 이상형은 정말 이상형일 뿐일까...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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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대화를 나눈다 생각하지만, 정작 소통을 가로막는 가림막은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물론 자신의 것도요.


때로는 비명을 지를 힘조차 탈진해 버린 듯 한 날이 있습니다.

문자, 통화, 이렇게 글쓰기가 가능하니 그래도 소통이 열려있어

살아갈 힘을 끌어 모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꾸역꾸역 앉아서 씁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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