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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Aug 24. 2020

코로나 19 시대의 흙과 물

-구두쇠와 과소비

‘돈을 물 쓰듯 한다.’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는가? 우리가 선뜻 떠올리는 사람은 "물자를 낭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지구위 다른 누군가는 "엄청난 구두쇠"를 떠올릴 것임을 생각해 보았는지!!


은 우리 생명과 직결되는 물질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에서나 우리 삶의 바탕이다. 하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이미지를 갖는다. ‘물’이라는 단어를 제시하여 떠오르는 관련어를 연상하라고 해보자. 

광대한 사막에 사는 사람과 큰 강가에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강수량이 적고 하천이 발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떨까? 광대한 사막처럼 물이 몹시 귀한 지역의 사람들은 '돈을 물쓰듯 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는 오래도록 낭비하기 쉬운 물질로 물을 빗대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물을 흔한 물질로 취급하기 어려운 실정에 접어들었다. 물을 돈 주고 사 마시는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이제 물이 부족한 국가라는 보도도 접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물자를 낭비하고 헤프게 사용하면 ‘물 쓰듯 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물 쓰듯 한다'는 말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게 된 20세기 이후에 생겨난 표현이다. 그 이전에는 지하수와 하천 등에서 식수를 구해 사용했고, 우물가나 물가로 나가 힘겹게 이고 지고 길어 와야 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와야 했으니 얼마나 고달펐을까 싶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아끼지 않고 낭비하기 쉬운 물질의 대명사는 물이 아니라 흙과 모래였다. 물자를 낭비함을 빗댈 때 보편적으로 ‘흙이나 모래 쓰듯이 한다.’는 말을 사용하였다.  예컨대 조선 정조 1년(1777) 대사헌 정창순은 상소문에서, “설령 나라의 날마다의 비용이 조금 여유가 있다 하여도, 조금씩 거두어들인 것을 흙이나 모래 쓰듯이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고 하였다. (정조 1년 7월 18일) 



일상에서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물질인 물이 이처럼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다. 하물며 내가 지닌 식견과 경험에 기초한 사고방식이나 판단의 기준은 어떠한가? 시간에 따른 세상의 변화와 지역에 따른 다양성을 향해 나는 얼마나 열려있는가? 


왜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변화에 적응하고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국 고립되고 쳐질 뿐이기 때문이다. 흔한 말처럼 누군가와의 경쟁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 보다 괜찮은 사람이기를 저버리는 일이다. 


눈과 귀는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봤자 동그랗게 한정된 하늘과 우물 벽만 바라볼 뿐이다. 옛 성현은 ‘소인이 명산을 다녀온들 여전히 소인일 뿐이다’고 지적하였다. 외부적인 경험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식견을 변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분별력은 경험과 안목이 함께 아우러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접 간접적인 여러 경험이 내면의 변화로도 이어져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세상의 변화에 저마다 힘겹게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질로 비유하자면 흙과 모래처럼 흔하고 익숙했던 일상이 사막에서의 샘물처럼 귀한 일이 되었다. 코로나19 이전에 흙과 모래처럼 낭비하던 물질이 사막에서의 한 방울 물처럼 귀한 것이었음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전개될지, 무엇이 달라질지 정확히 예견할 수는 없지만, 일어나는 이 변화 앞에 생존해 내야 함은 분명하다. 그 출발은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열린 안목과 분별력이라는 생각이다. 



글/그림 Seon Choi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우물가>, <시주>에 등장하는 여인을 흉내내어 우물가의 여인들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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