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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Aug 14. 2020

무고(誣告)와 ‘악플’의 무게

-이름이 있는 까닭

대학에서 이십여 년을 선생을 하면서 가졌던 제법 좋은 능력의 하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잘 외우는 일이었다. 요즈음의 용어로 ‘대면접촉’으로 강의실에서 마주 앉은 학생들과의 소통에 이름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보다 쉽게 이름을 외우기 위해 ‘커닝 페이퍼’처럼 출석부 옆에 특징을 적기도 하고, 어쭙잖은 솜씨로 캐리커처를 그려두기도 하였다. 그런 은밀한 작업의 결과로 질문이나 토론을 유도하면서 이름을 불러주면 학생들과의 소통이 훨씬 활발해진 느낌이었다. 


학교 안에서 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임에서도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늘 노력하였다. 메모를 해두거나 관련되는 비슷한 단어를 떠올리며 가능한 잊지 않으려 했다.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노력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 사람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고려 후기 유학 교육을 담당했던 문신 추적이 일종의 아동 학습서로 엮은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 실린 글이다. 풀 하나도 제 이름이 있음은 그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우리 각자의 이름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온전히 독립적인 내 존재 자체이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저지르는 여러 악행을 빈번하게 접한다. SNS를 비롯한 대중 매체에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비난 글이 난무하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거짓을 게재하는 일도 빈번하다. 단 몇 줄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 경우가 자주 일어나지만, 여전히 반복된다. 더 심하게는 수사기관에 거짓 내용을 신고까지 한다. 허위의 죄목으로 무고를 당해 가까스로 혐의를 벗어도, 이미 당사자가 입은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다. 


조선시대는 무고죄를 엄하게 다스렸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수령을 지낸 이적이라는 인물이 반란을 꾀한다는 익명서가 접수되었다. 군주정치 시대에 ‘반란’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앙 최고 관청인 도당은 익명서를 보고 이적에게 “너의 원수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적은 오직 김귀생뿐이라고 답하였다. 이적과 김귀생은 노비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이에 김귀생을 잡고 그의 집을 수색하였더니, 그 익명서의 초안이 나왔다. 무고죄로 김귀생은 극형에 처해졌다(1398(태조 7)년 4월 8일).


무고죄인은 특별 사면에서도 제외되었다. 조선 중종은 즉위한 지 12년이 지난 시기에 폐위된 연산군 대에 귀양 간 사람을 풀어주는 일을 논의하였다. 관료들이 죄수에 대한 문서를 조사하여 조목조목 내역을 아뢰었는데, 중종은 모두 방면하라고 명하였다. 신하들은 죄의 경중을 가리자고 하였지만, 중종은 이미 귀양살이한 지 10년이나 지났으니 죄다 놓아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남을 무고하여 죄를 받은 자는 작은 죄일지라도 용서할 수 없는 죄에 해당된다 하여 사면에서 제외하였다(1517(중종 12)년 11월 4일).


익명에 대해서도 엄격하였다. 세종 대 충주 사람 유연생이 열 명의 이름을 거짓 서명한 글을 지어와 형조판서에게 올렸다. 충청도 조절제사 이하 여럿이 반역을 음모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무리가 임금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서울로 향한다고 고발하였다. 


이를 접한 형조판서는 사람을 보내 조사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익명서는 받지 않는다.’는 법이 있다 하며 거절하였다. 신하들은 그 투서에는 서명이 명백하게 있으므로 익명서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유연생이 도망해 숨어버렸고, 글을 바친 자가 나타나지 아니하니 익명서라고 판결하였다(1431(세종 13년) 5월 9일).


세종이 엄격하게 익명서를 거론하지 못하게 한 법을 강조한 까닭이 있다. 간사한 무리가 자신은 뒤로 숨은 채 남을 모함하는 술책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중요해도 이름을 걸고 말하지 않는 사안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름의 무게는 그 사람의 삶 자체만큼이나 무겁다. 실명이든, 닉네임이든, 심지어 아이피(ip adress)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서로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에 하필 이 시대 나와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살고 있다. 존귀한 생명이 함께 하는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더불어 사는 이들에게 내 이름의 가치를 그릇된 심성에서 나온 ‘무고’, 남을 비방한 ‘악플’로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성함을 여쭈어도 좋을까요?" 그 존함은 천하만큼이나 무거운 생명 자체의 무게를 지녔음입니다.  

글/그림 Seon Choi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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