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Oct 21. 2020

까마귀머리가 하얘져도

- 싫은 사람과 나쁜 사람

각별히 싫은 사람이 있는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일까, 내가 보기에 나쁜 사람일까. 

공자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무례한 사람이었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불같이 화를 내며 지팡이로 종아리를 때릴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신 장유(1587~1638)도 싫어하는 사람을 지목하였다. 


“머리 회전 빠르고 약아빠진 인간들 / 기막힌 말솜씨로 아첨 떠는데 /

 출세할진 모르지만 / 도(道)와는 거리 멀지”(《계곡선생집》13권 최기남 비명)


장유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대사간,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문장에도 뛰어났다. 장유가 보기에  제 잇속만 챙기기 빠르고 아첨하며 출세를 도모하여,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음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편치 않다. 좋아했는데 싫어진 경우는 제법 흔하다. 싫어했는데 좋아하게 된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간혹 오해가 있었거나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싫은 감정이 들었는데, 그 오해와 이해 부족이 해소되어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성이나 노력이 감정을 극복하기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싫어하는 감정을 담아두고 사람을 대해야 함은 여간 힘들지 않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려 후기 문신 이곡(1298~1351)이 지은 시에 ‘까마귀의 검은 머리는 혹 하얗게 만들 수 있어도, 싫은 사람을 반가워하여 좋아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담은 구절이 있을 정도이다. 중국 전국 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이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다가 귀국시켜 줄 것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왕이, “까마귀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말에 뿔이 돋아나면 돌아가게 해 주겠다.”라고 했다. 태자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을 하자 금세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전설이다.(《사기》86 자객열전 논찬) 초자연적인  기적은 차라리 가능할지언정, 싫어하는 사람을 반기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역설적인 가르침이 있다. 


하늘의 작용은 사람의 일에서도 볼 수 있다. 

하늘이 쉬는 날은 하루도 없다.

시간을 빨리 가게 하여 사랑하는 임은 떠나게도 하고

시간을 늦추어서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보게 한다.

이런 하늘의 작용을 모조리 관찰한 다음에야

하늘의 뜻을 그런대로 알 수 있다 말할 수 있다. 

(최립(1539~1612), 《간이집》7권 / 송도록)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고,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보는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이해할 때, 하늘의 뜻을 그나마 조금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시간이 늦춰지게 느낄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보게 하는 하늘의 뜻은 무엇일까. 개인의 가치관이나 종교에 따라 매우 깊은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다만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왕왕 일어남이다. 사랑하는 임이 떠나버림을 어쩔 수 없듯이, 싫은 사람을 계속 보는 상황도 피하기 어렵다. 안 만나면 정말 좋겠지만, 이상하게 꼭 만난다. 이 직장을 옮기면 저기에서 또 만난다. 


내가 싫은 사람이 객관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방법이 없다. 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반응하는 나의 마음, 태도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내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나와 다 좋은 사람일 수는 절대 없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에서, 행복하려고 한 결혼에서, 취미로 나간 동호회에서 문득씩 그런 사람을 만난다. 심지어 SNS 공간에도 있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관건은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음이 아니라, 그런 경우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개인적으로 안 봤으면 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당시는 아주 고역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최립의 말처럼 하늘의 작용인지 그들과 일했기 때문에 다른 귀한 인연이 맺어졌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말 그대로 납작 엎드려 숨죽인다. 힘들지만 그 시간을 통해 반드시 나에게 좋은 경험과 새로운 인연이 이어질 것을 믿는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내 삶에 대한 소망으로 대체하는 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경험상 대개는 사실이었다. 


싫은 사람 자체가 내 삶의 의미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사라질 사람이다. 지나고 보면 걸림돌 같았던 싫은 사람이 다른 귀한 벗과 인연을 맺는 디딤돌이 되고는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원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싫은 사람, 함께 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때 나는 더욱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려 한다. 나의 삶에 더욱 진지하려고 한다. 그 예의와 진지함은 어떤 의미로든 내 삶에 더 귀한 의미로 남았다. 


※ 인용문과 그 해석의 출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제공하는 한국고전종합 DB.

※ Photo by The Narrative Lens 


작가의 이전글 뇌에 새겨진 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