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와 알고 싶은 욕구
비밀은 알려지고, 비밀은 또 비밀인지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적모의를 비롯해 개인적으로 은밀히 주고받은 음모나 험담 등이 드러나 한바탕의 소요가 일어난 사건을 종종 접한다. 하필이면 문 밖에서 누가 듣거나, 관련 물품을 결정적인 순간에 들켜 버린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변하여 발설하거나 배신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밀이 알려져 형장에서 스러진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싶다. 이처럼 세상에 비밀이 없다고 하지만, 밝혀지지 않고 묻힌 비밀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현대사에서 주요한 인물이나 기관 사이에 기밀하게 오간 문건이 자료집으로 발행되고, 데이터베이스로도 처리되어 공개되고 있다. 숨겨 둔 보따리를 풀어보니 빼도 박도 못할 물증이 나온 것과도 같은 자료도 많다. 그러한 자료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된다.
나 역시 한국전쟁 직전 소련이 남북한의 동향을 살펴 보고한 비밀 군정 문서라든지, 이승만 대통령의 비밀서한 등을 검색하여 논문에 활용하였다. 그 기밀 문건이 누구나 접속 가능하게 공개되고, 나 같은 사람이 읽고 분석하며 일부를 공개해 글을 쓰리라고 작성자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에게는 비밀문서였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공개된 역사적 자료이다. 주요한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정무에 관한 기록이므로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일반 국민의 알 권리에도 부응하여 공개되었다.
그러나 사생활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재상의 위에 오른 문신이며 학자 이규보(1168~1241)는 비밀에 대해 경계하는 명문(銘文)을 지었다.
친근하다 해서 나의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총애하는 처첩(妻妾)도 이불은 같아도 뜻은 다르다
거느리는 노복(奴僕)이라고 경솔하게 말하지 말라
겉으로는 순종하나 속에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하물며 나에게 친근한 사람도 부리는 사람도 아님에게랴
(《동국이상국전집》 19, 명, 스스로 경계할 일에 대한 명)
친한 사람, 심지어 아내와 첩, 집안에서 부리는 노복은 물론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다짐함이다. 이규보가 저렇듯이 조심한 비밀이 있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것이 범죄면 다른 이야기이다)
사람에게는 수치스럽거나 민망한 실수, 잘못된 판단, 부끄러운 경험 등 지나온 삶에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저마다의 비밀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규보가 다짐하고 다짐하며 글까지 지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 내 입에서 나가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는 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을 털어놓는 까닭은 무엇일까. 비밀의 무게 때문이다. 비밀은 발목에 족쇄이고 보이지 않는 구속이다. 무겁고 답답해 풀어 버리고 싶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문제이고 선택이다. 다른 사람이 건드리면 심각한 인격의 침해이다. 조선시대 최기남(1559~1619)이 사망하자 그를 그리며 지은 시의 한 대목을 보자.
어찌 험난함 없었으랴만
오직 의로운 길 걸어가면서
남의 비밀 들추어내지도 않고
휩쓸려 뒤따라가지도 않았다오
(《계곡선생집》13, 비명)
최기남은 언관(언론관)으로 재직하면서 시정의 폐단을 개혁할 것을 여러 차례 직언한 문신으로 유명하다. 학문과 재행이 뛰어나며, 직언을 서슴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지는 않았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를 기리는 명문에 기록으로 남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비밀’에 대한 호기심이 높다.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알고 싶게 자극함이 이를 증명한다. 부자 되는 비밀, 말 잘하는 사람의 비밀, 장수하는 비밀 등 ‘비밀’을 붙여 사람들을 유혹한다.
민주사회의 알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알아야 할 문제를 비밀히 덮으려는 획책은 용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사적인 비밀은 알고 싶지 않다. 비밀을 알 권리는 공적인 활동에 관해 적용된다. 다른 이의 개인적인 부분, 들춰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고 캐내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알고 싶은 추한 욕구일 뿐이다. SNS나 온갖 대중매체에 난무하는 ‘신상 털기’를 비롯한 온갖 사생활 침해,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다.
공개된 문서로 만나는 공적인 비밀
그 비밀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추적하며
오늘날 공적인 비밀은 용인할 수 없지만
개인의 사적인 비밀을 덮어두어야 함이 예의라 믿으며...
※ 인용한 시문의 출처는 한국고전번역원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