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여기, 이 봄날에 -
꽃은 어찌 이름도 그렇게 꽃처럼 아름다운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이미 제 혼자 꽃으로 존재하는 그 꽃들!
이 환희의 봄을 안겨주는 개나리, 목련, 유채, 영산홍, 모란, 수선화, 패랭이... 그리고 벚꽃.
수십 종에 이르는 봄꽃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생명의 봄을 노래하며 어김없이 찾아와 준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 집이라지만, 봄의 꽃나무 아래에 있노라면 이 들판에서의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만큼 취해 버린다. 그 환희로 가득한 취기의 끝에 붙잡는 생각이 무엇인지?
흰 벚꽃나무 밑에서 집에 돌아가기를 잊고
술에 취해 시 읊으며 지는 해를 아낀다
모르겠네 내년에 또 이 꽃을 볼는지
늙은 몸이라 마치 바람에 지는 꽃과 같은 것을
-《해상록》2에 실린 〈앵화시(櫻花詩)의 운을 따라〉중의 일부 -
하! 집에 돌아가기를 잊을 정도이며, 해 지는 것마저도 아쉬워하는 봄날의 흰 벚꽃나무 아래에서 시를 읊으며 마침내 한 생각이 ‘내년에도 이 꽃을 볼 수 있으려나....’이다.
‘상춘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봄날의 수많은 사람들, 그 밝아 보이는 표정 안에 담긴 생각은 무엇일까?
집에 돌아가기조차 잊은 사람들, 술에 취한 사람들, 해가 지는 것이 아쉬운 사람들, 또는 저 시의 작자처럼 어쩌면 내년에 이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년에도 함께일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바닷바람이 차갑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에도 봄이 왔다. 사실 혼자 보는 것이 아닌데, 봄에 취해 들판에 한량없이 앉아있노라면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언제나 드는 생각은 지금, 여기, 이 봄날에 꽃나무 아래에 두 발로 걸어와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만일 저 작가의 생각처럼 내년에 못 보면 어떠하리... 그것은 나도 존재하지 않음인 것을... 내 존재가 사라진 뒤까지 아쉬워하기에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할 뿐이다.
우스운 비유지만 강아지는 외출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지는 못한다. 3시간 뒤면 주인이 돌아올 것임을 헤아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강아지의 시간은 언제나 ‘지금’ 일뿐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다만 ‘현재’, ‘지금’에 살고 있다.
이 봄날, 나도 그렇게 살아보련다.
※ 시의 출처인 《해상록》(海上錄) 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사신이나 표류 등 여러 이유로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록을 집성한 책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 DB.
※ 시간과 개에 대한 서술은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