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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Nov 11. 2020

또 하나의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 코비드만 전염인가

오래 전, 대학을 다닐 무렵에 오빠가 미국 영화(VCR)를 대여점에서 빌려왔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다가 나는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 흉측한 모습이 주인공인 이른바 '좀비'(Zombie) 영화였다. 그 당시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생소한 좀비물은 이제 한 장르로 자리 잡은 듯하다. 


유달리 겁이 많은 나는 공포물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낸다. 하지만 여러 대중매체에서 공포물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장르이다.  나는 영화를 간헐적으로 즐기는 관객일 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문외한이다. 다만 공포물에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두려움의 대상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낀다.


1970년대 공포의 대상은 ‘전설의 고향’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TV에서 방송한 ‘전설의 고향’을 할머니가 애청하셨고, 할머니 무릎에서 자란 나도 덩달아 시청하였다. 흑백 tv이었기에 다행이지, 유혈이 연출된 무서운 장면이 많았다. 대개 여성(조강지처, 첩, 딸, 여동생 등)이 억울하고 한 맺힌 피해자로, 때로는 왜곡되어 해를 입히는 가해자로 나온 내용이 많았다. 어떤 날은 화면 속 장면이 너무나 무서워 할머니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날 때까지 덜덜 떨기도 했다.

(리모콘이 없던 시절이라,  끄기 위해 TV에 가까이 다가가지를 못했다)


전설의 원래 출처는 잘 모르지만, 조선시대 문집에는 여성을 요물, 여우 등으로 지목하며 구미호의 덫을 씌운 글들이 더러 있다. 사회적으로  남성과 가족에 대한 절대적 종속과 순종을 강요하며 왜곡된 틀 안에 여성을 가두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통제가 흐트러지는 것에 대한 경계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형태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자칫 틀을 벗어나려고만 해도 요망한 여자로 덫을 씌워 버림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여고괴담〉 등의 ‘학교 공포물’이 쏟아졌다. 우리 교육현장의 어두운 면이 투영됨이다. 

2000년 이후는 〈괴물〉처럼 환경오염으로 인한 파멸이 다뤄졌다. 성형으로 인한 문제나 유전자 변이에 따른 공포물도 등장하였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 단언하기 어렵지만 북미는 연쇄살인, 이웃 사람,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엽기사건, 그리고 핵 문제에 관한 공포물이 많이 보인다.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공포물에 좀비물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좀비는 비록 끔찍한 모습이나마 인간의 형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사고 능력이 없이 본능만 쫒는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 거리낌 없이 다른 이를 해친다. 집단의 움직임대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따라 움직일 뿐이다. 


오늘날 가장 경계해야 할 두려움은 사람들의 ‘좀비화’가 아닐까 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좀비 집단의 이름 없는 또 하나가 되어 휩쓸리듯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려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는 우리 스스로 가장 두려워하는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다. 


나와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분석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은 나만의 숙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세상과도 연결된 문제이다. 

COVID-19의 경우처럼, 내가 좀비가 되는 일은 나 혼자로 그치지 않고 옆사람에게 전염되며, 더더욱 확산되기 때문이다.



자칫.......좀비처럼 보일 수 있어요. ㅠ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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