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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Nov 14. 2020

농담, 재치, 그리고 욕

-서먹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남은 까닭

공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제자 자유(子遊)에게 농담을 건넨 고사가 있다.  자유가 무성(武城) 지방 수령으로 있을 때 정치를 잘 펼치고 있음을 재치 있게 칭찬한 이야기이다. 때로 재치 있는 한 마디 농담은 장황한 말보다 핵심을 더 잘 전달해 준다.


그런데 농담은 자칫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쉽다. 이 때문에 품위를 중시 여기는 선비들은 농담에 매우 신중하였다.


공은 사람됨이 굳건하고 사려가 깊었다. 평소에 농담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종일토록 경건한 자세를 유지하여 일찍이 방종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명재유고37, 박철 묘지명)


공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농담이나 천한 말을 한 적이 없었고, 항상 고요하고 조용하여 안색이 화평하고 언어가 진실하였다.(명재유고40, 유덕삼 묘지명)


공은 사람됨이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며 말이 적고 묵중하였다. 어려서부터 친구와 어울릴 때에도 실없이 농담을 하거나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간이집2, 정이주 묘지명)




묘지명에는 고인에 관한 상세한 인적사항뿐만 아니라 인품, 학문 등에 대한 평도 기록되어 있다. 생전에 학문을 좋아하며 경건, 단정, 엄숙, 굳건 등으로 평가받는 인품의 소유자는 하나같이 말이 신중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한편 적절하게 농담과 해학을 구사할 줄 모르는 것도 은근히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예기》에는 활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만 하고 풀어 줄 줄 모르거나, 풀어주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으면 제 아무리 문왕과 무왕이라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은 강약을 아주 잘 조절하는 인물로 평이 나있다. 그들을 인용하여, “한 번 당겼다가, 한 번 풀어 주는 그것이 바로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라고 가르친다. (《예기》 잡기 하)


북미에서 겪은 경험에 따르면 긴장하고 경직되는 학술발표회나 규모가 큰 국제심포지엄에서 대개 강단에 오른 연사의 첫마디는 모두를 웃게 하는 유모로 시작한다. 나 역시 그 첫마디 말을 고심해서 준비하곤 하였다. 뒤에 팽팽하게 활줄을 당겨야 하므로, 긴장을 풀 겸 일단 한번 풀어주고 시작해야 함이다.


그런데 정말 새겨 읽어야 할 대목이 있다. 19세기 실학자 이규경(1788~?)이 쓴 글이다.


요즘 항간에서 남에게 추한 말을 하는 것을 욕(辱)이라 한다. 그러나 '욕'자는 몇 가지 뜻이 있다. 《의례》에는 “흰 것을 검게 만드는 것을 욕이라고 한다.”하였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욕의 뜻은 결백한 것에 더러운 것이 묻는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꼭 화가 났을 때만 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좋아서 농담을 한다면서 추한 말과 남의 단점을 들춰내는 말로 마구 헐뜯는 말을 늘어놓는다.


친밀한 사이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매정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는 공연히 희롱이나 하고 시시덕거리던 버릇에서 나온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1, 경전류 2, 욕(辱) 자에 대한 변증설)


부적절한 농담을 ‘욕’이라고까지 지적하였다. 단점을 들춰내고 헐뜯는 말을 희롱조로 농담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이라고 못 박았으며, "군자는 비루하고 이치에 어그러지는 말을  멀리한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수업이나 학술발표를 할 때, 한 번 정도는 청중이 웃게 하는 게 '예의'라는 말을 했었다. 말하자면 활줄을 당기고 풀고를 잘 조절하려 하였다. 재치 있는 말을 듣는 즐거움은 크다. 그래서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물병 하나 들고 나와 듣는 이를 웃게 만드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매우 좋아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찾아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이규경이 지적한 것과 같은 ‘욕’에 해당되는 격이 떨어진 농담은 참기가 힘들다. 상대방은 농담이라고 건넨 말을 정작은 삭히느라 한참을 쓸데없는 ‘감정노동’을 한 일도 많다. 이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규경의 표현을 빌려 ‘서먹서먹하고 매정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팽팽하게 당긴 이 활줄을 재치 있게 풀고 당기던 격 있는 현실 대화가 때로 그립다.


마음의 우산은

말벗, 글벗과 더불 때

자동으로 걷혀요.

우리 서로에게 그런 글벗이기를요.

                                          

글/그림 Seon Choi


※ 본문에 소개된 인물과 책 :

유덕삼(柳德三, 1632~1702)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철(朴徹, 1585~1656) 조선시대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이주(鄭以周, 1530~1583) 조선 전기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조선과 청나라의 여러 책의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과 같은 성격의 책.

※ 인용문 출처는 한국고전종합DB. 서술의 편의상 여기에서는 쉽게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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