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쓴 주인공인 조선 후기 문신이며 학자인 윤기(尹愭, 1741~1826)는 당시 50세의 문턱에 서 있었다.
‘어린 딸’이 몇 살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인은 흰머리가 숭숭 올라오는 나이였다. 딸을 말리지 못하면서도 더 늙게 보일까 신경 쓰이는 마음을 담았다.
그의 어린 딸은 어느 순간 아버지의 흰머리를 뽑지 않게 되는 때를 맞게 될 것이다. 바로 아버지의 늙음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때이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철드는 때이다. 철이 들면서, 언제까지나 어릴 때부터 내내 보아 온 모습으로 있어 주실 것 같던 부모님이 어느새 노년으로 접어들고 계심이 보인다.
나의 엄마는 목소리가 맑고 고왔다. 지금도 목소리는 여전하시다. 집 전화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에 엄마가 전화를 받으시면 사람들은 목소리만으로는 엄마와 나를 종종 착각했다. 평생 마른 체형에 양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시는 편이었다. 내 엄마는 내 눈에 친구 엄마들 중에서 가장 젊고 세련된 엄마였다. 그리고 지적이었다.
내 엄마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언제나 젊고 단정한 모습의 엄마로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 엄마는 생각보다 더 마르고 약했다. 언제나 반듯하던 엄마는 생각보다 허리가 굽어져 있었다.
그 흔한 감기 배탈도 안 걸리는 것 같던 엄마는 아픈 데가 있었으며, 손마디가 굵어져 내 손보다 훨씬 큰 손이었다. 선한 미소와 잔잔한 목소리를 가진 엄마의 고운 얼굴은 생각보다 조금씩 조금씩 늘어난 주름으로 초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내 엄마는 내가 번쩍 안아드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이처럼 되어 있었다.
엄마는 어릴 때 함께 살던 내 외할머니의 모습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갔다.
내 아들이 어느 날 나의 흰머리를 보고 눈물지었다. 뽑아준다며 오히려 머리를 성글게 할 나이는 다행이 이미 지났다. 내 아들도 내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엄마임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