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Dec 17. 2020

다락방과 사랑방

-다락방에서 사랑방으로 건너간 송씨 -

고려 후기 유명한 문신이며 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이 자신의 문집에 전기를 남긴 송 씨라는 사람이 있다.



송 씨의 출가한 이름은 성총(性聰)이다. 하지만 승방(僧房)에 머물지 않고, 민천사 동쪽… 냇물 근처 두 칸짜리 다락방을 거처로 삼았다.

책을 쌓아 두고 손님을 맞이하며 날마다 그 속에 들어앉아 노래하고 시나 읊조리면서 지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곧장 술과 안주를 사서 먹고 마시는 데에 써 버릴 뿐 조금도 아끼는 법이 없었다.…

성격이 직선적이고 솔직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색이 바로 변하였고, 말이 한 번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뒤에 감당하지 못할 말도 마구 퍼부어대곤 하였다.


송 씨가 거처하는 곳은 물가의 좁은 다락방이지만, 그의 삶은 매인 데가 없이 그야말로 유유자적하였다.

그는 글은 물론 시와 그림에도 능했으나, 사람들의 평가에는 개의치 않았다. 경제적인 이익을 꾀하거나 손익 계산을 도모하는 법도 없었다고 한다.


이색이 14살이 되도록 시를 배우지 못했는데, 이따금 그를 찾아가 놀면 시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송 씨는 이색 보다 11세 연상이었다. 마침 과거시험의 초시(성균시)가 있었는데, 송 씨는 이색에게 적극 응시할 것을 권하였다. 이색의 집안 어른들은 ‘경거망동이나, 분별없이 행동함이 분명하다’, ‘누군가의 허탄한 소리에 넘어갔다’고 질책했지만, 송 씨는 직접 종이까지 사 주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마침내 이색은 급제하였고, 훗날 학문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송 씨의 힘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런데 송 씨가 그 다락방을 떠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는 《맹자》를 즐겨 읽었는데, “불효 중에서도 자손을 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라는 대목을 접하고는, 뭔가 느껴지는 점이 있었던지 이내 불교를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머리에 스스로 유생들이 쓰는 관을 썼으며, 결혼하여 딸을 낳았다. 한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합격하지는 못했다, 뒷날 이색이 북경에서 몇 년을 지낸 뒤 돌아와 보니 송 씨가 죽고 없었다고 슬퍼하였다.


냇가의 다락방에서 제 마음대로 유유자적한 삶을 살던 송 씨는 사랑방에 거하는 아비이며 지아비로 살아갔다. 다락방에서와 사랑방에서의 삶, 그는 어디에서 더 그 다운 행복을 누렸을까. 두 공간에서의 그는 어떤 모양새였을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도 다락방이 있었다. 어슴푸레한 기억에 한쪽에 작은 창문이 있고 제법 넓은 공간이었다. 오래된 이런저런 물건들이 보물찾기 놀이처럼 쟁여 있던 그곳은 어린 나에게 호젓한 놀이터였다.


이제 한국 대부분의 집안 구조에서 다락방은 사라졌다. 더욱이 모두가 사랑방에 나 앉아 있는 것 같은 시대가 되었다. 먹고, 입고, 만나고, 어디를 가고... 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사람들은 일상을 공개하고 공유한다. 삶의 현장이 마치 온갖 객으로 북적이는 사랑방처럼 되었다.



내 마음은 최근 몇 년간 외진 다락방에 들어앉아 있었다. 송 씨처럼 그 속에 오롯하게 있으며 읊조리면서 지냈다. 혼자만의 시간, 적막한 그 다락방에서의 시간이 익숙하고 편안해지니, 평생 분주하게 드나들던 사랑방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제 비로소 숨을 크게 내 쉬면서 공간의 제약을 넘어 SNS라는 사랑방으로 마실 다닌다. 벗을 불러오기도 하고, 슬쩍 손을 내밀기도 한다. 심지어 때로는 누가 오지 않나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흐려졌던 사랑방에서의 내 옛 모습도 하나둘씩 떠오른다. 참으로 많이 분주했고, 어설펐고,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 자신을 모르던 사람...


돌아보니 오롯한 다락방에서의 시간은 사랑방에로의 나들이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다시 현실의 사랑방에서 지금보다 분주한 날이 와도, 다락방에 틀어박힌 시간에 응축한 에너지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여러 해 다락방에 머물면서 얻은 인생의 소득이다. 


다락방과 사랑방, 한 몸이 동시에 있을 수 없지만 삶에 공존하는 두 개의 방이다. 냇가의 다락방에서 유유자적하던 송 씨는 사랑방에 거처하면서도 자기 삶을 즐겼으리라 믿어본다. 나 역시도 두 방에서 두루 편안하게 ‘나 자신’으로 잘 지내보고자 한다.



<옆자리>


마주 앉은 벗이 있건

누그러진 자국만 남아 있건

나는 여전한 나 자신일 뿐


오롯이 혼자이건

부산스럽게 여럿이건

나는 나로 있어야 할 것일 뿐


글/그림 Seon Choi


※ 본문에 소개한 인용문은 목은문고》20, 송씨전. 한국고전번역원 DB. 필자가 서술의 편의상 문장을 보다 쉽게 풀어 수정함.

※ 성균시 - 조선시대 대학인 성균관 소속의 유생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문반 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문과 시험의 첫 번째 시험(초시)


작가의 이전글 역관과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