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nChoi Dec 13. 2020

역관과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

- 단일어 사용자(monolingual)의 넋두리 -

외교는 국가의 운영에 필수 불가결한 분야이므로, 역대 모든 왕조는 외국어 교육과 담당 관료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대외 관계가 활발하였으므로 통역관을 길러내고 관리하는 조직이 있었겠지만, 정확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법제적으로 외국어를 교육하고 통역 관료를 양성하는 기관은 ‘사역원’이었다. 현대식 표현으로 하면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고어 등이 주요 과목이었다. 통역을 담당한 이들 ‘역관’(통역 관리)은 일반 문반 관료보다는 낮은 지위였다. 그래서 흔히 ‘중인’이라고 칭해진다.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지만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언어는 지역에 제약을 크게 받았다. 다른 국가에서 통용되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백성들까지 일상에서 배우고 익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어 각종 조약이 체결되고 아시아의 문호가 서양을 향해 열린 이래 영어는 아시아에서 공용어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2020년 현재까지 여전하며, 더욱 강화되는 실정이다.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면서 한자에 더해  중국어․일본어와도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영어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세계화’ 구호 속에 국사학계도 영어의 소용돌이에 결국 휘말려 들었다.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한국인 교수가 한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영어로 가르치는 ‘희한한’ 일까지 벌어졌다. 등 떠밀리다시피 그 강의를 수년 동안 맡아하면서 선생부터 내적 동기유발이 안된 수업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하였다. 


한국 대학에 갈수록 증가하는 외국인 학생(교환학생, 또는 유학생)에게도 한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했다. ‘외국인’으로 묶인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천차만별이었다.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학생부터 영어가 모국어인 학생까지 있었다. 그들을 한 강의실에 몰아넣고 영어로 수업을 하려니 나 역시 스트레스가 심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인가” 싶었다. 



얼마 전 브런치에 한글에 관한 글을 썼지만 한글은 인류 역사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자신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인위적으로 만든 거의 유일한 예이다. 극단적 표현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영어가 한국어보다도 더 필수이며, 더 능숙하게 구사해야 하는 언어로서의 지위를 넘보는 듯 보인다. 이태원 커피숖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주문하면서, 능숙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종업원이 오히려 민망해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것을 보기가 어찌나 힘이 드는지... “한국에 살면 한국말을 배워 주문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우리도 돌아볼 문제는 있다. 학생들의 서투른 언어능력, 잘못된 표현이나 속어, 비문은 앞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지식인의 글쓰기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문자는 한글인데 문장 구성이나 서술방식이 뜻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번역문도 아니고, 외국어의 직역도 아닌, 읽다가 덮어버리고 싶은 글도 난무한다. 이해도 되지 않게 이상한 글을 써 놓고 상대방의 지적 능력을 나무라기도 한다. 



외국어를 습득하고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갖춤은 매우 중요하다. 캐나다의 대학에서 주춤주춤 오가고, 몇  년째 여기에 살다 보니 제일 부러운 사람이 ‘이중언어 능력자’이다. 삼중, 사중 언어 능력자도 종종 만난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 능력껏 한글을 잘 구사할 수만 있어도 그동안 쏟아부은 등록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논문을 쓸 때도 그러하였지만, 브런치에도 글을 쓰면서 쓰고 또 고쳐 써도 역시 부족하다. 다른 많은 작가들도 글쓰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글은 누가 써도 완벽하지 않음이니 그 고민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격려하며, 오늘도 또 쓴다. 글쓰기는 내 살아있음의 확인이기에.


글/그림 Seon Choi


글 제목 그림은  <당 장회태자묘 벽화 신라사신도>,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i/view.do?tabId=01&code=0&subjectId=ti_007&levelId=ti_007_0350#self

사신과 동행한 역관이 있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림에 그려져 있지는 않다.


작가의 이전글 배신의 탁류 속 한줄기 맑은 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