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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Jan 04. 2021

두 마리 토끼-자족과 행복

- 2021년의 소망 -

옛 선비들은 궁극적인 삶의 가치를 ‘자족’에 두며 노래한 일이 많다. 

‘나의 보잘것없는 정자를 천하에 이름난 화려한 누각과도 바꾸지 않는다.’

'나무를 얽어 대략 만든 보잘것없는 문이 달린 거처에 지내도, 샘물이 졸졸 흐르고 굶주림도 즐길만한 한가한 삶이다.' 


자족은 가족, 재산, 지위 등 삶의 조건이나 상황이 현재 여하든 간에, 그 상황을 수용하고 그렇게 살아감에 스스로 만족함이다. 집이 누추해도, 벼슬자리를 잃었어도, 객지에 있어도, 벗이 없어도, 그저 나로서 족함이다 세상과 인연이 단절되어 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 해도 개의치 않음이다. 어떤 조건과 상황이든 자기 현재의 삶을 스스로 족하게 즐긴다는 뜻이다


그런데 행복은 자족과 조금 다르다. 전통시대 유교 경전이나 선비들이 남긴 기록에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복’(福), ‘지’(祉), ‘행’(幸) 등의 표현이 있다. 유교 사회였으므로 효, 충의 가치를 따라 어버이를 살피며 느끼는 행복, 임금을 섬기며 그 사랑을 받는 행복 등을 귀히 여겼다. 벗과 더불어 느끼는 행복, 가난해도 부부가 서로 아끼는 행복 등을 노래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철학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수양하여 드러내는 ‘유가적 행복’은 논외로 하고,  행복은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었다. 


조선시대 재상에 오른 문신이면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최립(1539~1612)이 있다. 그는 중국 문단의 거두인 왕세정과 문장을 논하고 학자들로부터 명문장가라는 격찬을 받았다. 명나라 유황상이라는 사람은 최립의 글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손을 씻고 향을 피운 다음 경건한 자세로 읽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그런 최립이 처음에 무인(武人)이라는 이유로 다소 꺼리다가 가까워진 송 첨지에게 보낸 글이 있다. 


우리 두 사람 서로 처음 만나게 된 때,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했다가도 나중에는 흉허물 없는 친숙한 사이로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서로들 거처하는 곳도 마침 가까워서 시간이 나면 내가 가기도 하고 그가 오기도 했는데, 마치 빈 골짜기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얼마나 한량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았는지 모른다.


이제… 산 남쪽과 물 북쪽에서 흰머리로 서로 의지해 살면서 물고기도 잡고 사냥도 하며, 자유롭게 슬슬 거니는 가운데 남은 인생을 마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 중의 행복(乃幸之幸也)이라고 할 것인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립의 성품은 고귀하였지만 다른 사람의 글 짓는 실력을 인정한 적이 없어서 지나치게 거만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무인이라고 처음에 존중하지도 않던 벗과 더불어 한가로이 지내는 생활을 행복 중의 행복으로 그렸다.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면 생각하기 어렵다. 다만 각 개인의 성격에 따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의 거리나 함께 하는 방식과 빈도는 다르기 마련이다. 내가 두고자 하는 거리와, 취한 방식, 빈도는 상대방과 다를 수 있다.  물론 결핍된 채로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결핍의 결과는 알게 모르게 삶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자족과 행복을 적당히 조절하며 두 가지를 다 누린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지금 나는 호사스러운 칩거와 고독에 자족하지만, 관계를 통해 누리던 행복의 결핍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COVID-19로 한국의 가족을 너무 오래 못 만나니 그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심히 결핍되어 있다. 흉허물 없는 오랜 벗도 그립다. 그 관계에서 누리는 행복은 대체될 수 없는 행복이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간에게는 대체되지 않는 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2021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는 인간의 본성에 희망의 초록불이 켜지기를 소망한다. 가족, 친구는 물론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콘서트 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교실에 얼굴을 마주한 학생들, 식당에 왁자지껄 함께 하는 사람들... 열거하기 힘들게 우리 모두는 모두가 필요하다. 


자족이 나 스스로를 지키는 능력이라면, 행복은 살아가는 힘이다. 열정이다. 자식의 행복을 보며 새벽바람을 가르며 아버지는 기꺼이 출근한다. 스스로를 잘 지키는 일도 중요하며, 열정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관계도 소중하다. 자족과 행복은 한 방향으로 가는 두 마리의 토끼이다. 모두 품에 안을 수 있다. 새해에는 그 두 마리 토끼와 함께 지내고 싶다. 



<난 편해, 그리고 행복해>


나로서 자족하고,

너와 더불어 행복해.


글/그림 Seon Choi


※인용문은 《간이집》3, 〈고사리 진소로 부임하는 송 첨지를 전송하며 지은 글〉, 한국고전번역원 DB.

최립의 시는 보통은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어구가 많다는 평이다. 편의상 그가 인용한 고사나 한자용어는 풀어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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