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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Feb 23. 2021

미국 잡지에 소개된 3・1 운동

- COVID-19 시대에 일상의 강탈과 목숨을 내어 놓음에 대하여 -

 

한국사 원어강의의 희생양(?)


정부의 국제화, 세계화의 구호 아래 대학에서 영어로 전공수업강의(원어강의)를 개설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 수업을 6년 정도 담당하였다. 한국 대학에서 한국 사람인 내가 한국어(+한자)로 이어져온  한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 ‘희생양’이 되었다. 내면에서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따라야 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톡톡하게 경험하였다.


특히 외국인 교환학생은 한국사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였다. 한 강의실에 모여 앉은 각양의 학생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경우부터, 수업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수준인 비영어권 학생에 이르기까지 영어 수준이 크게 달랐다. 그 수업을 끌고 나가기 위해 노력과 준비를 몇 배는 더해야 하였다. 3시간 수업을 마치면 뒷목이 당겨왔었다.


제국주의사와 냉전사의 어려움


수업 진행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19세기 이후의 역사에 들어서면 벌어졌다.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베트남, 대만 등 제국주의 시대에서 냉전 시대에 이르기까지 비극적으로 얽힌 국가 출신이 한 자리에 앉아 그  역사를 공부해야 했다. 마치 각각 ‘다윈(Darwin) 또는 신(God)’을 믿는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때처럼 잠재된 갈등이 수시로 드러났다.


독립기념관 방문의 일화


가끔 학생들과 박물관, 고궁, 유적지 등을 답사했다. 독립기념관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인 학생들이 관람 도중에 나와 전시실 밖 한쪽에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었다. 전시물이 보여주는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과 만행에 관한 내용은 배운 적도 본 일도 없다 하면서, 이렇게 끔찍한 전시물을 사람들이 보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이 내용들이 정말이냐고 항변하듯, 울먹이듯 되묻기도 했다. 20대의 어린 학생인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국전쟁을 비롯한 냉전 시대에 대해서도 미국, 중국 학생들 사이에 때로 신경전과 설전이 오가기도 하였다.


3・1 운동, 그 독립운동의 면면한 흐름


학생들이 국적이나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 모두가 감동하는 대목이 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놓으며 줄기차게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이다. 나는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국 관련 영문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프로젝트에 수년간 참여한 일이 있다. 그 가운데 1919년 12월에 미국 뉴욕에서 발행된 잡지에 3・1 운동이 소개된 자료가 있다.


우리는 ‘한국독립선언서’와  ‘공약 3장’을 읽었다. 로 시작하며, 공약 3장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이어 “이 선언서는 ‘대한인국민회’(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가 발표하였는데, 회원이 1,500,000명에 이른다고 하며, 이천만 내국인과 재외 한국인을 대표한다.”라고 소개하였다. 대한인국민회가 발표하였다는 내용은 잘못된 정보이지만, 공약 3장의 내용까지 번역하여 지면에 소개하였다. (사진)



일상을 포기하고 목숨을 내어 놓은 결단

 

사람들이 독립만세를 외쳤기에 치르는 대가는 참으로 혹독하였다. 어느 사람인들 단 한 번뿐인 이 삶이 소중하지 않으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꿈이 있고, 바라는 행복과 미래가 있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일상을 포기한 위대한 선택과 실천을 감행한 사람들이었다.


고난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수시로 몰아닥친다. 역사에서 스러져간 왕조가 한 둘이랴. 그것이 역사이다. 꽃길도 없고, 영원도 없다. 일제가 국권을 강탈함은 우리 민족에게 깊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역경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 주목할 일이다. 그 민족의 역량을 가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파산, 실직, 실연 등 삶에 몰아닥친 어려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삶을 헤쳐나가는 그의 역량은 봉착한 고난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로 가늠한다. 한민족은 쉬지 않고 항거했다.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던 평범했던 사람들이 일상의 포기를 넘어 목숨까지 내어놓았다.


COVID-19이 길어지면서 예전의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이 깊어지고 있다. 당연했던 일상을 다시 누리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불안과 우울감이 깊어지고 있다. 이처럼 일상이 강탈당한 것과 같은 상황에 맞이하는 3・1절은 느낌이 더욱 깊다. 내 일신의 평안과 행복에 집중하며 예전의  일상을 누리지 못함을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선조들 앞에 부끄럽다.



※ 관련 기사가 실린 사진은 미국 뉴욕에서 간행된 잡지,《The Field Afar》, 1919년 12월호.

※ 기사에 나온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Korean National Association)는 안창호, 박용만, 이승만 등이 참여하고 이끈 독립운동단체.

※ 제목의 사진은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1919년. 사진출처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 소중한 기록유산 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 3・1 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 기록물소장처- 독립기념관.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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