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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Jul 13. 2021

태평양에 빠지라는 엄마

- 일어설 힘을 주는 엄마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의 전기에는 그를 있게 한 어머니에 관한 일화가 한 자락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의 어머니, 한석봉의 어머니 등 많은 어머니를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사실 맹자의 부모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어머니의 ‘삼천지교’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부모의 성 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맹자의 생몰연도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B.C. 372~289으로 추정한다.


맹자가 어머니에게 감화를 받아 학문에 노력한 다른 일화도 있다. 정확하지 않지만 맹자는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에 가서 학문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어린 나이였던 맹자는 도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서 짜던 베를 칼로 자르고는 “네가 공부를 중단한 것은, 내가 이 베를 자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맹자는 다시 분발하여 위대한 유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떤 지인이 호주로 유학을 갔을 때, 향수병이 걸려 너무 힘들어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어머니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오려면, 도중에 태평양에 빠지고 오지 마라.’고 하며 단호하게 전화를 끊으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결국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나는 어떤 엄마인가. 맹자의 엄마도, 태평양에 빠지라는 단호한 엄마도 못된다. 자식이 공부를 그만두고 돌아오면 아마 ‘그까짓 거 때려치워라’고 하며 한 술 더 거들었을지 모른다(실제로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가고, 짜던 베를 자르며 중도하차를 경계하건, 그렇게 나약하게 굴 거면 태평양에 빠지라는 말이건 그 모든 것을 넘어 자식이 느끼는 것은 부모의 삶과 사랑이었다고 생각된다. 부모의 삶 자체, 그리고 순간의 언행을 넘어 담겨있는 사랑... 그것이 홀로 세상을 걸어가는 것 같은 삶에 마르지 않는 동력임을 느낀다. 


조지 칼린(George Carlin)이라는 미국의 코미디언은 흔히 쿠키나 음식에 사용하는 선전 문구인 ‘Home made'를 냉소적으로 비판하였다. 말하자면 ’Home'이 갖는 일반적이고 고착된 고정관념을 조롱하였다. 어떤 엄마가 있는 가정인 것이냐고, 알코올 중독자? 연쇄살인마? 학대하는 엄마? 어떤 엄마가 있는 가정에서 만들어진 쿠키라는 거냐고 비아냥거렸다.  ‘어머니’ ‘엄마’하면 그려내는 이미지나 표현할 수 있는 단어에 공통점은 분명 있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그 슬하의 모든 자녀는 다 다르다. 부모-자식이라는 공통분모를 갖지만 우리는 서로 모두가 다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려 한다. 


어느덧 나의 아들이 장성하여 세상에 홀로 살아내느라 저만치에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바람 불고 파도치는 이 세상에서 꿋꿋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꿋꿋이 살아간다는 것은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흔들리고 무너지고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을 걷다가, 뛰다가, 가끔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작정 주저앉아 있었던가.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설 힘은 엄마라는 존재였다. 엄마의 치마 품에서 나던 아련한 엄마 냄새, 슬라이드처럼 펼쳐지는 평생의 엄마의 온갖 모습들.... 그 영상이 기억 속에서 뛰어나와 자동으로 재생되면 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나의 무너짐과 재생되는 엄마 영상의 교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브런치 작가 프로필에 민망함을 누르며 구색을 갖추느라 역사학자, 작가... 등을  나열했다. 내게 가장 무거운 프로필은 ‘엄마’라는 단어이다. 자식이 있어 자동으로 된 엄마가 아니라,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온 생명을 지혜와 사랑으로 품는 엄마이려고 노력한다. 유교 경전, 성경, 인물의 전기 등 여러 기록에 나오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고 생각한 날도 많다. 마감 없는 이 프로필.... 오늘도 지혜와 사랑으로 잘하고 있는 걸까 또 짚어본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엄마도 되는 것이기에,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마음에 담는다. 뚜벅뚜벅 아들의 저 발걸음이 무거울 때, 흔들릴 때, 때로 주저앉을 때 그 무릎에 힘을 주는 엄마이기를 소망한다. 


<이제야 보여요>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게 있어요.

홀로 흘린 어머니의 눈물

시리고 무거운 아버지의 등


이제야 보여요.

봄 새싹을 위해 썩어진 낙엽

사랑만이 전부였던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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