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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nChoi Sep 05. 2021

말을 알아듣는 '말귀'

-연산군과 장녹수의 비극을 통해 본 소통의 공공성

역사에는 군주와 그 곁의 여인이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정사와 야사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며 전해진다. 그 가운데는 대중문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유명한 ‘짝’들이 있다. 연산군과 장녹수도 그 주인공들이다. 연산군은 폐위된 군주이며, 장녹수는 참형에 처해지고 모든 재산은 몰수당한 후궁이다.


세간의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들의 이야기는 TV 사극과 영화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다. 장녹수의 경우는 1962년에 개봉된 영화 ‘폭군 연산’에서 타계한 여배우 도금봉이 맡은 것을 비롯해 윤정희, 이미숙, 강수연, 이하늬 등 내로라하는 여배우가 그 역을 맡았다. 작품을 모두 챙겨본 것은 아니지만 대개 ‘요염한 악녀’의 이미지로 그려 내었다.


그런데 정작 직접 장녹수를 본 사관의 의견은 이와 전혀 다르다. 사관은 장녹수를 동안이기는 하지만 ‘용모가 평범한 사람보다도 낫지 못했다’고 평하였다. 둘러 표현했지만 그나마 중간만도 못한 외모를 순화한 표현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다.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 집안의 한 노비의 아내가 되어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으로 봉했다. 용모는 중간 정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은밀한 교태와 요염한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연산군 8년(1502) 11월 25일)


잘 알려진 것처럼 연산군은 ‘폭군’이었다. 연산군에 대한 평의 첫머리가 ‘만년에는 더욱 함부로 음탕한 짓을 하고 패악한 나머지 학살을 마음대로 하였다.’고 시작할 정도다. 하지만 장녹수에게는 ‘온갖 상을 내리며 그 마음을 기쁘게 해 주려하였다.’고 사관은 증언하였다.


그런데 장녹수의 ‘은밀한 교태와 요염한 아양’에 대한 사관의 부연 설명은 사뭇 의외다. 장녹수와 연산군의 관계를 연산군이 마치 ‘종’이고, 장녹수가 ‘주’와도 같았다고 묘사하였다. 장녹수는 왕을 젖먹이처럼 취급하여 마음대로 다루면서 조롱하였고, 왕을 놀리고 모욕하기를 마치 노예한테 하듯이 하였다고 한다. 관료들이 목격한 연산군은 매우 크게 화가 났다가도 장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며 웃었다. 어떻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두 사람만의 소통의 방식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은 연꽃이 활짝 피어오른 태액지라는 연못에 가까운 인척과 더불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왕의 인척들은 모두 연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그러자 현종은 손으로 양귀비를 가리키면서 “나의 말을 알아듣는 꽃만이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현종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특화된 '말귀'를 가진 양귀비를 당연히 가까이 두고 싶었을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는 말귀가 열린 사람과의 소통은 얼마나 큰 의미인가. 답답하게 막힌 세상이 뻥 뚫리는 것과도 같은 ‘속 시원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서로서로는 누구와 어떤 소통을 나누고 있는가. 그 소통은 나를 벗어난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내가 누리는 소통은 어떤 방향으로든 다시 나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주변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권력을 가졌거나 그 언저리에 있다면,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크고 작은 기업이나 심지어 친목이나 종교, 이념, 취미로 모인 공동체이건 간에 소통의 내용, 소통하는 사람들의 범위, 소통자와의 관계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맺고 살아가는 세상에 특정한 사람하고만 통하는 소통의 위험은 연산군과 장녹수의 비극적 최후가 증명해 준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마스크로 가려도 미소는 보이고

가림막이 막아도 대화는 나눠요.


대화와 소통에

대면, 비대면이 무슨 상관일까요.


보이지 조차 않는 가림막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통하지 않는

이 "불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귀가 닫혀 있다면

나누는 말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일 뿐이죠.


※ 본문에 인용한 사료는 《조선왕조실록》 해당 조.

※ 본문의 사관(史官)이란 늘 국왕의 곁에서 국왕의 언행을 기록한 관리였으며, 사관을 운영한 제도는

매우 우수한 제도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사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 링크를 참조.

https://theme.archives.go.kr/next/silloc/archiveGuard.do?submenu=2

글/그림 Seo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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