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횡하는 사생활 폭로 -
마침내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정지선 가까이 움찔거리며 다가오는 승용차가 있었지만 냅다 건널목 노란 페인트칠 위로 올라섰다. 부지런히 옮기는 내 발걸음 뒤에 더 커진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뒤통수를 따라온다. 서서 기다릴 때보다 걸으며 통화하려니 목소리는 더 커진다. 흘긋 돌아봤을 때 나보다 체격도 작고 나이도 많아 보였는데, 목소리 데시벨은 내 두 배 같다. 공교롭게 걸어가는 방향이 같다.
'아, 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갈까 …'
그럴 여유가 없어 결국 다른 집 가족이 대판 싸운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다 들은 뒤에야 길이 갈렸다.
원하지 않게 들어야 하는 다른 이의 말소리도 도시에서 접하는 공해다. 일상의 평안을 헤집는 도시의 공해는 자동차 소리, 번쩍이는 불빛, 매연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하지 않게 듣는 사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작은 부스럭 소리에도 반응하는 강아지의 청각과 절대 비교할 수 없지만, 나는 다른 이에 비해 유달리 작은 소리를 잘 듣는다. 또한 다른 사람은 별문제 없이 듣는데, 볼륨을 아무리 줄여도 내 귀가 자극되는 목소리도 있다. 드러내지도 못하고 귀를 내 맘대로 열고 닫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만 한다.
‘프렌즈’라는 유명한 미국 시트콤에서 특이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캐릭터의 하나로 설정된 ‘제니스’(미국배우 매기 휠러, Maggie Wheeler)라는 여성이 등장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 여성 특유의 말소리와 웃음소리에 모두가 기겁하는 스토리다. 다른 이의 목소리는 그렇게 우리 생활에 큰 변수의 하나이다.
소리만이 아니라 내용도 그러하다. 갈수록 다양해지고 발달하는 미디어는 이른바 ‘핵개인’이라는 현대인을 지지리도 끈덕진 아교로 한데 들러붙게 한다. 정치인, 유명인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안물안궁’의 사생활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갈수록 더 세상에 공개된다. 정말 ‘안물안궁’ 내용인데 의외로 공감과 위로를 받을 때도 있지만, 10초 전의 몰랐을 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이야기가 세상에 횡행한다. 나와 무관한 사람의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 폭로를 보고 들으며 비위가 상한 경험이 나만의 특별한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온갖 사생활 폭로가 섞이고 얽힌 자리는 상대적 박탈감, 비난, 시기, 질투, 미움이 난무한다.
조선시대 학자, 정치인은 곧잘 《논어》에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내면서 곧은 체하는 자를 미워한다.”라는 말을 인용(1)하며 자신을 경계했다. 공인으로 ‘강직하였으나 다른 이의 허물이나 사생활을 들추어내어 거리낌 없이 비방하지 않았다.’는 큰 덕목이었다. '임진왜란'(2) 초기 동래성 전투에서 패전했지만 항복하지 않아 살해된 송상현(宋象賢)의 아우 송상인(宋象仁)이 있다. 재상까지 오른 그를 기리는 시에도 “강직하였지만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았다.”(3)는 구절이 있다.
조선후기 학자이며 정치인 허목(1595~1682)이 72세 겨울 동짓날에 입으로 지을 잘못을 경계하여 지은 16가지 덕목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남을 평론하여 헐뜯고,
자신은 곧은 체하며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내고,
남이 잘하는 것을 멸시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말은
비난을 초래하고 화가 자신에게까지 미치니 절대 경계해야 한다. 4)
선현은 남의 사생활을 들춰내며 비방하는 속내는 자신은 올바른 체하며 다른 이를 공격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적용한다면 남의 사생활을 들춰내어 비난하는 까닭은 나는 그렇지 않은 올바른 사람인양 포장하기 위함이다.
지난가을, 그 아름다운 가을에 한국에 2달 머무는 동안 하루하루가 정말 귀했다. 그런데 e메일이라도 검색하려면 포털에 뜨는 기사제목들, 매의 눈도 아닌데 눈에 턱턱 걸렸다. 집안 어른들은 나는 2로 조절하는 볼륨을 18도 넘게 키우고 TV를 본다. 날이면 날마다 보이고 들려오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사생활 폭로에 심신이 다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이 힘들었다. 이 힘든 소모전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치르고 있는 것일까. 알고 보니 내가 ‘초예민’이고, 그래서 지불해야 하는 생존의 비용일까.
자기 삶의 결정권을 자신이 갖고 홀로 선 핵개인 시대라지만 미디어의 발달로 개인사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노출되고 있다. 나 역시 직접 만나지 않은 엄마 친구들의 신상을 알고 있고, 그분들과 연결된 더 많은 부분을 무한정 파고 들어갈 수 있다. 사춘기 이후 별로 속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살아온 오빠가 요즘 뭐 하는지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집과 직장에서,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나 ‘핵개인’은 여전히 다른 이와 뒤섞이며 속세를 살아간다. ‘나는 자연인이다’고 외쳐도 그 외침 자체가 벗어날 수 없는 세상과의 관계를 역으로 보여준다. 온갖 목소리가 한 데로 뒤섞여 내는 소리에 예민한 핵개인은 오늘도 나의 평안을 위해 분투한다.
부디 ‘안물안궁’인 다른 사람의 사생활 폭로에 고양이수염처럼 곤두선 내 감각이 닿아 혼비백산 달아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찬 가지로 다른 이의 화살이 내 성에 날아 들어와 찔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숨을 가다듬는다.
1) '임진왜란'은 명칭을 놓고 여전히 학계의 이견이 있다. 교전 당사국인 한국, 일본, 중국의 용어가 제각각이며, 영어권의 학자는 또 다른 용어를 사용한다.
2) 《논어》 양화(陽貨),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내면서 곧은 체하는 자를 미워한다.[惡訐以爲直者]”
3) 《계곡선생집》12, 〈고 통정대부 수 전라도관찰사 송공 묘갈명 병서〉.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4) 《기언》67, 〈자서 속편 -노인의 16가지 경계〉.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0694928
https://www.youtube.com/watch?v=tn0vWqY7MzI&ab_channel=%EB%B6%81%EB%9E%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