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양산

내 취향이 깃든 물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by 소라움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 산책을 나서는 길이다.


"오늘 햇볕이 너무 뜨겁더라"


나는 허리를 굽혀 내 서랍 안쪽에 곱게 접혀있는 양산을 꺼냈다. 검고 선명한 선으로 무민과 스너프킨이 회색 천 위에 그려진 우양산인데, 벌써 1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무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지금의 남편이 선물해 준 물건인데, 나를 떠올리며 이 우양산을 고른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그런 마음에 보답하듯, 더 오래 소중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비바람이 부는 날에는 다른 우산을 쓰고, 얕은 보슬비가 내릴 때나, 햇볕이 내리쬐는 날 양산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차양막도 없는 얇은 우양산이지만, 따끔하던 햇빛이 얇은 천을 통과하면 고운 필터를 지난 것처럼 부드럽게 변해 내 볼에 스민다. 햇살과 마주할 때면 무민을 감싼 단단한 선들이 부드럽고 투명해지고, 나의 걸음에 맞춰 양산이 함께 들썩이며 내 시야를 살짝 가려주는 게 꽤나 매력적이다.

나는 산책길에 혼자 중얼거렸다.

"이런 게 하찮은 기쁨이지."


하지만 이런 기쁨이 하찮게 만들어진 건 아니다.


"나는 (무민)을 좋아해"

"나는 (차)를 좋아해"

"나는 (여행)을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삶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단히 나의 취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핑계로 수많은 쇼핑과 경험을 해보았고, 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를 오가며 물건을 사고 버리고 경험하고 후회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편안해하는지 조금씩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찾았고,

그 캐릭터가 담긴 물건들은 설레는 맘으로 집어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걸 나에게 선물해 주는 사람을 곁에 둘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소중하게 여기며 아껴 쓰는 사람이 되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양산에 비친 햇빛을 바라본다.

휴양지에서 만끽했던 햇빛,

기분을 살피며 천천히 마신 차 한 잔,

미각의 중요함을 말하며 음미한 여러 음식의 기억들이 겹쳐진다.

작은 시도와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내 삶은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그리고 즐겁게 변해간다.


작고 단단한 기억들이

돌탑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귀엽다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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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