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는 도시락

먹는 즐거움을 스스로 마련하는 일

by 소라움

"점심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나는 망설이지 않는다.

"도시락이요."

1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줄곧 나는 도시락을 싸다.


오늘 점심엔 트러플오일파스타를 먹었다.

어제 저녁에 가족과 와인과 함께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미루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 애호박과 트러플오일을 잔뜩 넣은 파스타를 한 솥 크게 볶아냈다.

한 입 먹는 순간 트러플 향이 가득하고, 부드럽고 달달한 애호박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실수는 너무 작은 새우를 산 것이지만, 앞으로는 무조건 큰 새우로 사자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포크를 돌려댔다.

"이건 내일도 먹어야 해."


이 바람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도시락파'라는 점이다.

나는 밤 10시에, 파스타를 볶기 시작했다.

도시락통에 파스타를 잘 담아내고, 마지막으로 트러플오일을 한 번 더 둘러준 뒤, 파슬리가루도 솔솔 뿌려준다. 내일 점심을 기대하며 행복하게 잠들었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점심시간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제 술 마시면서 간을 봤는데... 소금을 넉넉히 넣었으니 괜찮겠지?"

어제 먹었던 그 파스타의 맛을 다시 상상하며 오전을 보냈다.


12시가 되자마자, 나는 느긋해 보이지만 빠른 걸음으로 탕비실로 간다.

전자레인지에서 1분, 따뜻해진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는 순간,

어제의 감동이 밀려오고 나는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탕비실 문이 열릴 때마다

"오늘 좋은 냄새나네요?"

"누가 맛있는 거 싸왔어요?"

나는 자랑하듯 나의 도시락을 보여주었고, 아주 든든하고 행복한 식사를 마쳤다.



스물다섯, 첫 직장에서부터 나의 도시락 생활은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월급으로 학비를 내야 했고, 도시락은 '절약'의 수단이었다.

서울 중심가의 직장생활, 100만원 초반의 급여로 매일 8천원의 식사를 사 먹는 일은 꽤 버거웠다. 마침 나와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나를 기꺼이 본인들의 도시락 크루에 합류시켜 주었다.

그 시절 엄마는 학창 시절에도 싸주지 않았던 점심을 매일 아침 챙겨주었다.


다음 직장에서도 도시락 생활은 이어졌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었고, 흡족한 식사를 하려면, 10분은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도시락을 택했다. 엄마는 혼자 사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혼자 먹기 힘든 양의 밥을 밥통에 가득 담아 주었는데, 나는 그 밥을 반절로 덜어내어 함께 나누어먹었다. 우리는 반찬을 넉넉하게 싸와 한식뷔페에 온 듯 서로의 반찬을 공유했다.

"이거 먹어봐, 어제 시장에서 구운 김 사 온 거야."

"오늘은 제가 김치찜을 싸왔습니다."

"너네 집은 나물이 참 맛있다."

우리는 밥을 나누며, 정을 쌓아갔었다. 그렇게 서로와 자신을 돌보았다.


절약하기 위해 시작된 도시락 생활은 나에게 나눔과 따뜻함을 알게 해 주었고,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해서' 도시락을 먹는다.


내가 생하는 도시락의 이점은 이러하다.


1. 점심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12시 땡 하면 도시락을 먹고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다.

게다가 '뭘 먹을까' 고민하는 정신력 소모도 줄어든다.

2.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나는 실내에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

3.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내 생활에 맞춘,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어제 새로 산 감태김이 먹고 싶은데 꾹 참았을 때는 점심에 가져와 맛있게 먹으면 된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는 간단한 샐러드를 챙겨 오기도 하고, 오트밀을 가져 오기도 한다.

나의 하루를 가늠하고, 나를 위한 음식으로 식사를 챙길 수 있다.

4. 냉장고 파먹기도 가능하고, 환경도 보호한다.

냉장고를 비우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과 꽤 닮아있다.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뭘 해먹을지 생각하는 과정은 나를 돌보는 과정과 비슷하다. 게다가 환경도 보호하니 1석 2조다.


도시락은 어느덧 나의 취향과 나의 시간 그리고 나의 감정이 담긴 그릇이 되었다.

매일 작은 통 안에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을 담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이어주고, 점심시간마다 나를 돌보고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 준다.

이제 파스타 도시락까지 영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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