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공기

내 팔목의 인공호흡기

by 소라움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팔목에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본 경험이 있을 거다.

나도 그렇다.

바쁜 하루 중, 하던 일을 멈추고 향수를 꺼내어 뿌린 뒤, 깊게 숨을 들이쉰다.

향이 내 콧속으로 날카롭게 들어오고, 이내 내 몸 주변을 느린 나선형으로 퍼진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나 좀 힘든가 보다.'


향수는 나를 다독이고, 숨 돌릴 틈을 기어코 만들어내는 존재다.


예전엔 과일향, 꽃향처럼 상큼하거나 달달한 향들을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향들이 나를 그렇게 보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 늘 밝고, 가볍고, 행복한 사람으로.

그러던 어느 날, 러쉬 매장에서 우연히 '브레스 오브 갓(Breath of God)' 향수를 만나게 되었다.

직원은 나에게 "이건 신의 숨결이라는 향이에요. 저는 중요한 날 이 향을 뿌려요."

그 말이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왔고, 얼마 뒤 시험 보러 가는 날, '브레스 오브 갓'을 뿌리고 집을 나서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 중 하나다.


그 이후 내 취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파촐리, 나무, 훈연, 스모키한 향처럼 묵직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은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이 반영된 걸까, 그런 향을 맡으면 붕 뜨던 마음도 잠시 가라앉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티베트 사원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된 숲이나 동남아 골목 어딘가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의 감각은 참 신기하다. 향 하나만으로 마음속의 수많은 기억과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얼마 전 집단상담을 할 때였다. 깊은 감정의 골이 건드려지는 순간, 나는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파우치에서 향수를 꺼내고 팔목에 뿌린 뒤 그 향에 숨을 묻었다. 그제야 비로소 편안하게 숨이 쉬어졌다. '인공호흡기가 있다면 이런 걸까?'

선생님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힘으로 나를 안정화하자"며 제안하셨다. 그 말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아주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나만의 안정제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여러 개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향을 고른다.

세상의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내가 맡을 향기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작은 위안이 된다. 확실한 사실 하나만으로 나에게는 큰 안정감과 자유를 준다.

향은 물성이 없다.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은근히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내 영역 안에 들어온 사람들과 조용하고 아주 사적인 연결을 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면모도 마음에 든다.


향은 나에게 힘든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도구이다.

하찮지만 확실한 기쁨을 주는 존재.

나를 관찰하고, 향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나를 다시 추스른다.


나는 나를 돌보고 싶은 순간, 향수를 뿌리고 조용히 숨을 내쉰다.

파우치에 담기엔, 고체향수만한게 없다. 왜 브레스오브갓은 고체향수가 단종되었나요. 카마는 바디크림으로도 정말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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